번개가 내리치는 악조건 속에서도 우사인 볼트(27·자메이카)는 번개처럼 내달려 단거리 최강자의 자리를 확고히 했다.
볼트는 12일(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제14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00m 결승에서 9초77로 우승을 차지했다. 4년 전 베를린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세운 세계신기록 9초58에 비해 부진한 성적이지만 천둥이 치고 비가 쏟아지는 악천후를 감안하면 단거리 황제의 위엄에 모자람이 없는 기록이다.
6번 레이스에 자리를 잡은 볼트는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우산을 펼치는 자세로 경기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자신의 유일한 약점인 스타트에서도 결승에 참가한 선수 중 두 번째로 늦은 0.163초의 반응 속도를 보이며 우승에 대한 우려를 샀다.
그러나 볼트는 중반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가속도를 보이며 80m 지점에서 경쟁자들을 일찌감치 따돌렸다. 2위를 차지한 저스틴 게이틀린(31·미국)은 "볼트의 긴 다리가 나의 오른쪽으로 지나가는 것을 봤다. 정말 대단하다"고 볼트의 기량에 감탄했다.
이로써 볼트는 2년 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부정출발로 실격당한 충격을 말끔히 씻어내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만 여섯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미국의 칼 루이스가 보유한 세계선수권대회 최다 금메달(8개) 기록에 2개 뒤져 있으며, 이번 대회에서 200m와 4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면 루이스와 타이 기록을 이루게 된다.
외신들은 궂은 날씨와 다리 통증, 부진한 스타트 등 걸림돌을 딛고 우승한 볼트에 찬사를 보냈다. 독일 dpa 통신은 "번개 치는 장면은 마치 신이 볼트의 라이벌에게 보낸 경고메시지 같았다"고 보도했다.
영국의 텔레그래프는 "지난 4년간 국제대회에서 벌어진 39차례 100m 결승에서 볼트를 이긴 선수는 고작 4명이며, 이들은 모두 금지 약물을 복용한 선수"라며 볼트의 기량을 높이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