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금요일 저녁을 기다려 본 적이 없었다. 주말을 앞두고 특별한 약속이나 거창한 계획이 있어서가 아니다. 이번 주에는 '할배'들이 어떤 좌충우돌 여행기를 보여줄지 너무나 궁금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기대를 품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듯하다. 지난 금요일에 방송된 케이블채널 tvN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할배' 대만편의 평균 시청률은 무려 7.1%(닐슨코리아)에 달했다. 1%만 넘겨도 히트작으로 분류되는 케이블 방송가에서 엄청난 대박을 터뜨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1회 때 3.5%로 시작된 시청률은 8회째까지 한 번도 기세가 꺾이지 않아 이젠 지상파 방송을 위협할 수준이다. 이같은 인기의 주된 이유중 하나가 평균 연령 76세인 할배들이 유럽과 대만을 배낭여행하는 모습을 보며 '노년의 삶이 저 정도는 돼야지'란 로망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현실도 꽃할배와 비슷할까.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중위가구소득의 50%에 못 미치는 가구비율)은 2011년 기준 약 4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부끄러운 1위다.
통계청의 '2012년 고령자통계'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고령자 중에 취업을 희망하는 노인이 5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된 이유로는 '생활비에 보탬이 되기 위해'가 가장 많았다. 연금 등 복지제도가 잘 갖춰지지 못해 생계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하는 가난한 노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꽃할배들처럼 해외여행의 낭만을 즐기는 대신 폐지수집이나 노점, 경비와 같은 시간제아르바이트 등으로 고통받는 할배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다.
물론 정부에서도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환경미화, 경비 등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일자리에, 그것도 임시직으로 고용하는 '전시 행정'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통령 공약이었던 기초노령연금도 오락가락이다.
꽃할배의 주인공인 H4(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는 여행 중간 중간 "이번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이런 여행을 감히 꿈이나 꿨겠냐"고 말한다. 아이돌들이 점령하다시피한 예능프로그램에 자신들을 들러리가 아니라 당당한 주인공으로 등장시켜준 PD와 방송사에 무척 고마워한다.
역발상의 지혜를 앞세운 파격적인 전략이 프로그램의 인기는 물론, 꽃할배들에게 '뒷방 늙은이'가 아닌 100세 시대 당당한 주인공으로써의 자존심을 찾아준 셈이다.
정부도 글로벌 경제위기, 재정난 등과 같은 여건 탓만 할 게 아니라 역발상의 지혜를 짜내야 할 때다. 잘 생각나지 않는다면 예능프로그램이라도 보고 배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