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가족의 합리성
알고 보면 문제 없는 가정이 없다지면 대개의 일상에선 우리는 서로에 대한 불만족을 누르고 정으로 끌어안고 살아간다. 문제는 안 좋은 일이 생길 경우다. 대표적으로 부모님들이 아프실 때.
처음엔 자식들은 슬퍼하고 부모들은 자식들한테 민폐 끼칠까 미안해하며 신경쓰지 말라고 손사레를 치신다. 그러다가 병환이 조금씩 장기화되면서 기류가 서서히 변한다. 걱정어린 한숨보다 가족들은 지쳐간다. 서로 눈치를 봐가며 짜증섞인 책임미루기가 시작된다. 급기야는 시간과 돈을 의식하게 되면서 '나만 손해보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성인'이 아닌 이상 평범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더 많이 베푸는 것이 만만하게 이용당하는 게 아닌가 의심을 한다. 어쨌거나 인간의 본성은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인 것이고 남의 몸(가족도 엄밀히 따져선 남이다)보다 내 몸을 더 아끼는 것이다. 간혹 티비프로그램에서 갈등이 극에 치닫던 가족들의 관계개선프로그램을 다루던데 말미에 훈훈하게 끝났을 망정, 카메라가 사라진 후 어떻게 될까가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다.
이기심의 싹이 표면으로 노출되고 감지되면 어느새 너나 나나 '나만 억울할 수 없다' 싶으면 상황이 불신과 카오스로 치닫는 건 시간문제다. 실질적 노동 외의 이러한 감정스트레스가 더 크다. 그러나 내가 한 구석 기대는 것은 가족구성원들의 이기심도 합리적일 수 있다는 믿음이다. 가족 중 누군가가 나서서 모두의 불안하게 일렁이는 이기심들을 차분히 취합해서 짜맞추고 거기서 삐져나오는 부분은 각자 조금씩 타협하고 포기하도록 조정해볼 수도 있다. 가족에 대해 헌신이나 죄의식으로 '감정적'이 될 게 아니라 이기심의 교통정리 후, 각자가 할 수 있는 것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실질적'으로 하는 것이다. 다만 이게 설득이 되려면 가족 중 '누군가'가 나서서 먼저 상대적으로 더 손해를 보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다른 가족들은 안도하고 말을 들으니까. 표면적인 효사상이나 가족애가 무리하면 가족불화와 붕괴로 이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가족 안에 합리성과 배려가 균형을 이루는 게 다 함께 살 길이다.
글/임경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