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무가 나올 때면 의원이 문 닫는다.' 옛날 의사들은 초겨울 무 수확철이 되면 걱정이 태산 같았다. 환자가 줄어 개점휴업을 걱정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제철에 나오는 무가 그만큼 좋다는 이야기를 에둘러 표현한 것인데 겨울 무가 몸에 이롭기는 이로운 모양이다. 2세기 중국 후한 때 사람 장형(張衡)이 '남도부'에 봄철 계란, 여름 죽순, 가을 부추와 함께 겨울 무는 아예 보약이라고 적었다. 사계절을 대표하는 몸에 좋은 음식으로 겨울 무를 꼽았던 것이다. 장형은 우리나라로 치면 세종 때 장영실과 비슷한 인물로 천문기구인 혼천의 등을 만든 과학자지만 의학에도 밝았다.
실제 중국의 '본초강목'을 비롯해 우리 '동의보감'에도 무의 장점이 적혀있는데 특히 동의보감에는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달아 음식의 소화를 돕는 데다 가래를 멈추게 하며 오장의 나쁜 기운을 씻어준다고 나온다.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무를 인삼에 버금가는 채소라는 뜻에서 토인삼(土人蔘)이라고까지 불렀다.
다섯 가지 이로운 채소라는 뜻에서 오미채(五美菜)라는 별명도 있다. 날것으로 먹어도 좋고 김치를 담가도 좋으며 뿌리로 배고픔을 면할 수 있고, 무를 먹으면 염증이 치료되는 데다 삶아 먹으면 잃었던 기운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무를 즐겨 먹은 왕도 있었으니 바로 정조 임금이었다. '국조보감'에는 정조 스스로 "어렸을 때는 밥을 적게 먹는 대신 아침저녁으로 무를 많이 먹었다"고 말한 기록이 있다. 왕세손이 밥 대신 무를 먹도록 허락한 것을 보면 내의원들 역시 무가 보약이라고 믿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요즘 김장이 막바지로 무가 한창 맛있을 때다./음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