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봉구 방학 사거리를 지나 우이동 계곡 가는 길목 우측에는 조선 10대왕 연산군의 묘가 있다. 묘 옆에는 부인 폐비 신씨도 나란히 묻혀 있다. 묘표 곳곳이 패이고, 금이간 상석마저 보여 권력의 무상함을 실감케 한다. 조선 왕까지 지낸 그는 왜 후미진 도봉산 기슭에 묻혔을까?
조선시대는 선비(사림파)들이 기득권을 가진 반대파(훈구파)나 왕에게 몰려 탄압을 받은 네 번의 커다란 '사화(士禍)'가 있었다. 이중 연산군 재위 당시 무오사화와 갑자사화가 발생했다. 연산군은 개혁 세력인 '사림파의 거두' 김종직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끄집어내 목을 자르는 부관참시를 했고, 그의 제자 김일손 등 수백명의 사대부들을 처참하게 죽이는 단군 이래 최대의 숙청을 단행했다.
참다못한 신하들에 의해 그의 광기는 1506년 중종반정으로 끝을 맺는다. 중종 반정이후 김종직,김일손등 연산군에 의해 처참하게 처형 당했던 선비들의 명예도 회복됐다.
폐주가 된 연산군은 '군'으로 격하돼 유배지인 강화도 교동에서 31세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6년 뒤 "시신만이라도 옮겨 달라"는 폐비 신씨의 간청을 중종이 받아들여 도봉산 기슭인 방학동 산77에 묻히게 된 것이다.
요즘 다시 연산군이 화제가 되고 있다. '김정은식 공포정치'가 연산군의 소름끼치는 광기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이미 4차례에 걸친 군 수뇌부 교체와 절반에 가까운 당·정·군 인사 물갈이에 이어 2인자이자 고모부인 장성택과 측근들을 연이어 처형하면서 극단적인 공포정치를 펼치고 있다.
급기야 국방부는 내년 2월 하순을 전후해 국지도발 가능성과 4차 핵실험 실행을 경고하면서 한반도의 긴장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북한 내부사정을 고려할때 한반도 정세는 한 치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형국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여야 정치권은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으니 답답할 뿐이다.
무기력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정치권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 '댓글' 정국에서 빠져 나올 해법을 찾아야 한다. 머리를 맞대고 국가 안보를 굳건히 하고 민생을 살리는 지혜를 모아야 할때다. 박근혜 대통령도 갤럽 여론조사결과 지지율이 48%로 하락하고, 부정적 요인 중 '소통이 가장 미흡하다'는 민심을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김하성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