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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인문학 산책] 겨울나무

그 무엇도 걸치지 않은 채 겨울 한 복판에 서 있는 나무들은 '자연의 사제'인 듯하다. 욕망의 흔적은 일체 사라진 여윈 두 팔을 하늘로 펼치고 기도하는 경건함과 하늘마저 얼게 하는 차가운 바람을 견뎌내는 묵묵함이 배어나온다. 찬란했던 시절의 짙은 녹색과 해가 기우는 날 뿜어냈던 황금빛은 계절의 강 저편으로 자취를 감추었으나, 세월이 그 키만큼 길러낸 기품이 뿌리처럼 깊다.



거대한 산맥이 사막을 옆에 끼고 달리다 지쳐 맥을 놓아버린 황폐한 땅에 홀로 자라는 외로운 나무와, 세속의 추격으로부터 몸을 숨긴 밀림 속 사원의 주춧돌을 휘감고 뻗어가는 나무는 아쉽게도 이 겨울을 모른다. 만일 알았다면, 그 고독이 자기 혼자만의 것이 아니며 굳은 땅을 뚫고 바위를 이겨야 하는 숙명을 가진 동족이 자기 말고도 지구에 존재한다는 걸 위로로 삼았으리라.

어둠이 잠기는 시각, 숲은 인간에게 금단의 경계망을 친다. 지금까지 쉽게 내어주던 공간을 자신들의 그림자로 채운다. 낮과는 전혀 다른 나무의 표정은 그래서 읽어내기 어려워진다. 그러고 보면, 그건 나무만이 아니다. 인간도 그 시각이 되면, 타인에게 밀폐된 독방으로 들어가 휴식과 함께 자신만이 해독할 수 있는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태양이 머리 위를 우주의 궤도에 따라 흐르는 동안 듣고 느끼고 보았던 광경들이 기억으로 번역되고, 회상으로 기록되어 간다.

누군가는 고단해진 몸을 나무에 기대고, 누군가는 그 아래에서 연인을 끌어안고 뜨겁게 입맞춤을 했으리라. 누군가는 자신의 세월과 나무의 세월을 견주어보고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가늠했을 것이며, 또 누군가는 나무가 있는 풍경에 흠뻑 취해 이제라도 시인이나 화가가 되겠다고 작정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사연들을 나무는, 고해성사를 대하듯 제 몸 안에 비밀서류처럼 차곡차곡 쌓아간다. 그리고 영원히 침묵을 지킨다. 가장 믿을 만한 사제다.

지구가 세상을 향해 드러낸 핏줄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나무일 것이다. 붉은 색은 아니지만 천지(天地)를 이은 동맥이 거리에, 산에 그리고 들판에 그득하다. 우리는 그 생명의 혈관에 몸을 연결하고 사는 실낙원 이후의 아담과 이브다. 태초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이 축복은 단 한 번도 철회된 적이 없으며, 도시가 숲을 탐욕스럽게 갉아먹고 들어선 이후에도 거두어지지 않았다. 겨울을 큰 가르침, 종교로 만드는 나목(裸木)이 이리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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