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이드북 '론리 플래닛'은 작가들이 직접 가본 곳만을 다루는 데다 정부나 기업의 후원도 받지 않기에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간과해서는 안 될 점도 물론 있다. 호주에 본사를 두고 있는 론리 플래닛의 작가 대부분이 영미권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즉 영어를 주언어로 쓰는 이들의 시각에 기반해 그들이 궁금해 하고 또 가볼만하다고 생각하는 곳들을 주로 소개하고 있다.
비슷한 경우는 한국에도 있다. 지역마다 '단양팔경'이니 '관동팔경'이니 멋진 풍광을 콕 찝어 가리키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들 가운데 일부는 외부인의 시각에 의해 정해졌다는 것이다. '수원 팔경'이 대표적이다.
수원 팔경은 화성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가리키고 있다. 겨울철 광교산에 쌓인 흰 눈을 의미하는 '광교적설'과 팔달산 솔숲 사이로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뜻의 '팔달청풍', 수원천 제방에 주욱 늘어 서있는 수양버들을 가리키는 '남제장류' 등이다.
헌데 그것들은 애당초 지난 1913년 일본 대중가요 작사가인 후지노가 '일본인을 위한 조선 철도여행 안내지'에 싣기 위해 선정한 것이었다.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조선의 정조임금이 화성을 축조한 뒤 김홍도로 하여금 화성 주변의 여덟 가지 빼어난 풍광을 그려 바치게 한 것과는 단 한 가지만 일치할 뿐이다.
김홍도의 그림이 화성 축조와 관련이 있던 만큼 주로 백성의 삶이나 군사 부분에 관련돼 있던 것과는 달리, 지금의 수원 팔경은 그저 유희의 공간으로서의 팔경일 뿐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수원 팔경을 두고 '식민지배자가 식민지를 대하는 시각이 투영되어 있는 증거'라고 비판해도 항변할 여지가 없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된지 25년이 다 되어 가지만 지금도 일본 책들을 가져다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베껴쓴 가이드북이 횡행하는 한국의 현실…. 그런 책들의 한계를 말하기에 앞서 이땅의 풍광을 바라보는 시각을 먼저 되돌아봐야 하는 현실이 못내 씁쓸하기만 하다.
/'다시, 서울을 걷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