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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인문학산책] 코르도바의 전설

지중해의 태양은 황금빛 오렌지를 닮았다. 이걸 차지하는 자가 위대한 제왕이 된다는 전설에 매혹된 자들이 오디세이의 후예들이 됐다. 이들이 세운 도시마다 신전이 들어섰고, 영웅들은 사랑에 맹세를 하고 전투를 벌였다.

그런 사나이들이 사라진 세월이 무려 1000년은 더 흘렀음에도 돈키호테가 둘시네아를 연모하며 방랑 기사가 된 것은, 지중해의 햇살 탓인지 모른다. 풍차를 돌릴 기운이 넘치는 바람이 불고 있는데 어떤 때에는 너무나 뜨거워 머릿속 골이 녹아버릴 지경이라며, '돈키호테'의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는 "아직도 생각할 수 있는 골이 남아있다면"이라고 익살을 부린다.

지중해의 바닷길은 문명의 교차로였다. 트로이전쟁의 유민들이 로마의 뿌리가 되었는가 하면, 페니키아의 뱃사람들은 카르타고제국의 조상이 된다. 어디 그뿐인가? 다마스쿠스에서 밀려난 이슬람의 한 족장은 이베리아반도에 당도, 새로운 고향을 건설한다. 중세 유럽이 고대 그리스의 유산과 결별하고 독단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을 때 이들은 대학과 도서관을 세우고 '공존의 철학'을 연마한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코르도바는 바로 그와 같은 작업이 펼쳐지는 본거지였고, 여기를 찾아든 중세 유럽의 지식인들은 르네상스라는 다음 시대의 준비를 위한 훈련에 몰입했다. 이곳 칼리프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이 서로 배우면서 존중하게 하고 '책을 읽는 사람들의 정신세계'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자신도 본향에서 쫓겨나 망명자가 됐던 세르반테스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역사의 핵심으로 성찰한다. 이 다채로운 삶이 누렸던 풍요로움이 깨진 것은 1492년 가톨릭의 독점 체제가 이슬람과 유대인들을 축출하면서부터였다.

대서양으로 뻗어나간 스페인은 이후 200여 년 동안 위세를 떨치지만 결국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 자신의 내부에 존재한 다양한 역량을 스스로 파괴해버린 결과였다. 물론 어떤 역사도 차고 기우는 곡절이 있기 마련이나 서로 다른 차이를 아우르는 힘을 잃으면 다시 일어서는 일은 너무나도 힘겹다. 별로 뜨겁지도 않은 태양 아래 이미 머릿속이 녹아버린 것도 아닐 텐데 인간은 그런 어리석음을 되풀이해 저지른다.

코르도바의 신화는 그러나 아직 종료되지 않았다. 인간에 대한 사랑에 맹세를 하는 영웅은 지금도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고, 차이를 차별이 아니라 축복으로 이해하는 시대는 황금빛 오렌지를 자기 땅에서 길러내는 법이기 때문이다.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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