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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놀로그] 좋은 말의 압박



세상에는 하고 싶어도 하면 각박하고 나쁜 사람 될까봐 못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자, 오늘은 그 이야기를 용기내어 할까 한다. 나는 지하철 스크린도어의 시가 싫다. 시각적으로도 거슬리고 읽어도 감흥이 없다.

시는 한 개인의 가장 깊은 내면의 생각들을 담는 것이기에 제3자가 보기에 이해 안 되거나 '이게 대체 뭘까?' 싶은 건 자연스러울 수도 있지만 괴로운 건, 서울시가 나름 시민들의 정서함양을 위해 아이디어를 짜서 일반공모전도 치루며 등단시인들과 협의를 통해 이루어낸 과업일 터인데 그런 '좋은 일'을 기껍게 여기지 못하는 나의 척박한 마음이 안겨주는 죄의식 때문이다.

물론 역마다 시가 다르니 어쩌다 가슴을 울리는 글귀를 만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나는 이 문화정책에 반대할 것 같다. 시의 천차만별 수준이 문제가 되어 중간에 수준고르기 등의 개선책을 내기도 했다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얼마나 좋은 시를 읽게 하느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제아무리 좋은 글이다 하더라도 그 좋은 것을 취하는 적절한 장소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적절한 장소란 바로 내가 취하고자 하는 장소를 선택할 수 있는 곳이다. 그 곳들은 분명 모든 이들이 이용하는 열린 공공장소는 아닌 것 같다.

한데 한국에선 역으로 불특정다수에게 좋은 글을 뿌리는 것을 참 좋아한다. 전봇대 사이에 걸린 '이런 저런 좋은 일을 하자' 플랭카드, 화장실 소변대 위의 '참 좋은 생각' 스티커글. 하물며 길 잃은 양들에게 좋은 말씀 전하고자 거리에서 고성방가하는 종교메신저들. '난 이렇게 당신에게 거저 좋은 이야기를 해주려는데 왜 그게 문제가 되지?'라는 우월한 윤리의식을 두르고 말하는 이는 공공선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그저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좋은지 아닌지, 내 정서함양에 보탬이 되는지 시각공해인지 판단하는 것은 개인이고, 개인의 선택이 차단된 노출은 억지로 읽히는 프로파간다가 아닐까.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시가 붙어있다고 시가 많이 읽히는 도시, 문화적으로 성숙한 도시가 아니다. 글/임경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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