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 2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또 한 번 김연아 신드롬이 불어올 조짐이다.
이달과 지난달 차례대로 열린 국내·외 대회에서 최상의 기량을 뽐낸 김연아는 올림픽 무대에서 이변이 없는 한 두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국민들은 그가 펼칠 아름답고 완벽한 경기를 만끽하기만 하면된다.
현역 마지막 무대를 앞두고 김연아를 모델로 쓰고 있는 기업과 공식 후원사들은 올림픽 특수를 기대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 3사는 국민적 관심이 집중될 김연아 경기 중계 방식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사실상 '소치 올림픽=김연아 올림픽'이라는 인식이 관련업계에는 자리잡았다. 심지어 김연아의 금메달 하나는 한국이 이번 올림픽에서 노리는 실질적인 목표나 다름 없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국민의 관심이 온통 김연아에 향해 있는 요즘 소치 올림픽을 향한 소중한 승전보가 이어지고 있다. 변방 중의 변방으로 취급돼온 썰매 세 종목 봅슬레이·루지·스켈레톤의 선수들이 약속이나 한 듯 국제대회 기록들을 갈아치우고 있다.
봅슬레이는 남자 4인승과 2인승, 여자 2인승 등 모든 종목에서 최초로 올림픽 티켓을 따냈고, 루지에서도 사상 최초로 남·여 싱글과 남자 2인승, 팀계주 등 루지 4종목에 모두 출전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스켈레톤의 윤성빈은 세계 톱 10의 기량을 보이며 올림픽 티켓을 거머쥐었다.
이들이 제대로된 경기용 썰매는 물론 정식 트랙조차 없이 훈련해 왔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더욱 놀라운 점은 대표팀 대다수가 어린 시절부터 전문 교육이라고는 받아본 적이 없는 선수라는 점이다.
봅슬레이 남자 대표팀 에이스 원윤종은 4년 전까지만 해도 체육교사를 꿈꾸던 평범한 대학생이었고, 여자 대표팀 파일럿 김선옥은 육상 단거리 선수로 뛰다가 2년 전 이 길로 접어들었다. 루지의 최은주와 박진용은 2010년 호기심 반으로 선발전에 출전했다가 대표가 됐고, 성은령은 4년 전까지 루지가 뭔지도 제대로 몰랐던 선수다. 스켈레톤의 간판스타 윤성빈은 1년 반 전만 해도 평범한 고교생이었다.
한마디로 무모하리 만큼 비관적인 현실 속에서 앞만 보고 내달려 맨땅의 기적을 일궜다. 이들의 리얼 스토리는 현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전하는 희망가와 같다.
저성장 시대, 세계 경제의 장기불황, 높아만 가는 취업 문턱 앞에 대부분의 청년들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을 뿐더러 할 수도 없는 불행한 현실에 놓여 있다. 한여름 아스팔트 위에서 바퀴 달린 썰매를 타고 훈련해온 선수들은 이 같은 불행을 희망으로 바꿔놓았다.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지만 썰매 하나에 자신의 미래를 올인한 이들은 이미 올림픽 금메달 그 이상의 가치를 창출했다. 김연아가 주지 못 할 그들만의 감동 드라마가 벌써 소치 올림픽을 기다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