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학로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유골이 무더기로 발견된 적이 있다. 지난 2008년 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맞은편에 위치한 한 건물을 철거하면서 14구의 유골이 발견된 것이다. 한국전쟁 때 숨진 이들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있었지만 일부 두개골에서 보이는 예리한 절단 흔적들에 대해서는 누구도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기어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석 달에 걸친 정밀분석을 실시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DNA 검사를 통해 유골의 주인공이 14명이 아니라 28명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중에는 젖먹이의 유골도 3구나 있었다. 과연 그 뼈들의 주인공은 누구이며, 왜 그곳에 집단으로 묻힌 걸까?
해답은 '그 땅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곳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경성의학전문학교 해부학교실 등이 위치해 있었는데, 일제는 그곳에서 단순히 해부학 연구만 한 것이 아니었다. 전국에서 조선인 유골을 모아다 일본인과의 인종적이며 체질적인 차이를 조사하는 등 인종론 연구도 진행했다. '조선인은 뇌가 작아 지적인 결함이 있고 열등하기 때문에 개화를 위해서는 일본의 조선 지배가 필요하다'는 식의 정치적 주장을 위한 어거지 근거를 찾기 위해서였다.
물론 헛일이었다. 어떤 유의미한 차이점도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일제는 좌절하지 않았다. 도리어 일본인과 조선인은 큰 차이가 없는 민족이라며 내선일체론을 강화하는 근거로 이용하기에 이른 것이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억지춘향이식 끼워맞추기였다.
그러고 보면 대학로에는 일제의 의학 연구와 관련한 흔적들이 적지 않다. 서울대병원 본관 앞에는 지난 1922년 의학 실험에 희생된 동물들의 넋을 위로하겠다며 세운 '실험동물 공양탑'(사진)이 서있다.
말 못하는 짐승을 위해서도 공양탑을 세웠던 이들의 마음을 자비롭다고 해야 할까? 대학로에서 발견된 유골을 포함해 식민지배기에 행한 각종 폭력과 인권유린에 대해 일본 정치인들은 지금도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고 있지 않다.
/'다시, 서울을 걷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