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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인문학산책] 낙타





"별과 달과 해와/모래만 보고 살다가/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등에 업고 오겠노라고/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길동무 되어서" 신경림의 시 '낙타'의 마무리 대목이다.

그는 세상을 하직하는 날, 낙타를 타고 떠나겠다는 19세기 탐험가 같은 유언을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노시인의 문학적 발언이지, 죽기 전 중앙아시아 어디쯤에서 괜찮은 낙타 한 마리 미리 알아보겠다는 뜻은 아니다. 살아생전 힘차게 달리던 맥 어느 세월 자기도 모르게 잃고 흰 상여에 떠 매여 가는 것도 아니고, 남아있는 제 힘으로 이 범상치 않은 등의 곡선을 가진 이국의 동물 위에 올라타겠단다.

이만하면, 삶의 마지막 여정이 그리 수척하지 않고 홀로가 아니다. 세상에 다시 태어나면 낙타가 되어 가장 어리석은 누군가의 길동무되어 가겠노라 밝힌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낙타일까?

대상(隊商) 카라반은 그림자 하나로도 모래벌판의 완벽한 풍경화를 만들어주는, 목이 길지만 슬프지 않고 눈빛 너그러운 이 짐승이 아니고는 상상할 수 없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인간이 낙타에서 사자, 그리고 어린 아이로 가는 초극(超克)의 과정을 설파한다. 자기 짐도 아닌 것을 강제로 지고 가는 낙타는 노예의 단계이고, 이를 극복해야 자유의 주인인 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자는 자유를 위한 싸움의 긴장에서 영원히 풀려날 수 없다. 정신의 평화는 아직 획득되지 못한 것이다. 어린아이는 이 모든 것에서 해방된 존재 자체를 상징한다.

흥미롭게도 '짜라투스트라'는 '낙타를 모는 사람'라는 뜻이다. 그가 창시자가 된 조로아스터교는 어두운 세상에 불을 밝히라는 하늘의 뜻을 선포한 종교다. 그 이름대로, 고집 센 야생낙타를 길들여 사막에서 인간의 길동무가 되어가도록 하는 그 오랜 시간은 낙타의 인내와 수고, 그리고 희생과 수없이 마주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니체가 본 것과는 다르게 노예가 아니라, 때로 절망스럽고 처절한 시간을 인간과 함께 해준 존재로서 말이다.

바람이 몹시 불던 날, 타림분지 너머 고비 사막 언저리를 잠시나마 밟게 해준 낙타가 떠오른다. 말의 해라고 하는데, 난데없이 낙타를 떠올린 까닭은 달리 있지 않다. 혹여 인생의 사막을 만나도 마음속에 낙타 하나 함께 하면 갈 길이 막막하다고 쉽게 지치거나 외롭지 않을 것이다.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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