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피해자인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문제해결이 가장 좋겠지만 쉬워보이진 않는다. 그럴 때 우리는 곧잘 무의식적으로 정신승리를 한다.
우선, 겪은 그 부당한 문제를 사소하고 별 것 아닌 걸로 스스로 축소시키며 합리화한다. 인생에서 한 번쯤 겪는 안 좋은 일을 겪었다, 똥밟았다 생각하고 너그럽게 떨쳐버리라는 것. 한국 특유의 액땜론, 즉 이번에 안 좋은 일을 당했으니 다음엔 그럴 일이 없다는 미신도 돕는다. '합리성'이라는 카드를 빌려오기도 한다. 저항하면 오히려 문제가 더 복잡해지거나 악화될 수 있어 나만 손해라며, 남들이 다 꾹 참고 넘기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논지다. 객관적으로 불의에 저항하는 일은 옳지만 내 가족이나 친구라면 말리겠고,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며 '똑똑한' 이들은 그렇게 할 거라는 자기합리화다. 한데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의 바로 위와 같은 '정신승리' 마인드를 보란듯이 악용할 것이다.
사소한 문제에 연연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니다. 치사하고 구차하다. 그러나 나에게 중요한 문제는 객관적으로 크고 작은 게 따로 없다. 사소해도 내게 중요하다면 바로잡아야 하고, 하물며 사소하다고 넘어가면 나중에 결코 사소하지 않은 큰 부당함은 어떻게 저항하겠는가. 문제를 해결하려 들면 더 복잡해진다고? 가만히 두면 겉으로는 평온할지 모르나 안으로 곪고 어 그 댓가는 더 오래 치뤄야 한다. 똥이 더러워서 피한다고? 천만에, 무서워서 피한다. 모든 저항에는 두려움이 따른다. 단순히 스트레스나 번거로움, 시간낭비 외에도 내가 이런 부당한 일을 당할 만큼 약자임을 공개하는 것에 대한 수치심, 가해자의 앙심을 사는 부조리극까지도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고 저항하는 일은 아주 작아보이는 문제라도 힘겹고 외롭고 두려운 일이다.
살다보면 정당한 저항이나 실천을 멈추는 방법이 다양한 논리로 곳곳에 숨어있음을 알게 된다. '좋게좋게' 넘어가자는 담합의 유혹에 내가 기꺼이 설득당할 때, 잘못된 관행은 점점 고착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