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를 공부하다 보면 스벤 헤딘과 오렐 스틴이라는 이름을 만나게 된다. 19세기 말 20세기 초반 실크로드 탐험의 선두 주자들이다. 실크로드라는 명칭은 리히트호펜이 처음 사용했지만 동서 문명교류의 길을 인류사에 새롭게 아로새긴 사람들은 이들과 같이, 당시 오지(奧地)라 할 중앙아시아 변경에 들어선 탐험가들이다.
그들의 글을 읽어나가노라면 우리는 망각된 과거가 생생하게 복원되는 경이로움을 체험하게 된다. 물론 이들이 문화재 절취의 과오로 인해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도 실크로드 역사의 지울 수 없는 대목이다.
이들이 밟아간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또 다른 뛰어난 탐험가 오웬 라티모어와 마주하게 된다. 오늘의 신장지역과 중앙아시아, 만주와 몽골에 이르기까지 그의 견식은 전방위적으로 뻗쳐있다. 그렇게 펼쳐지는 문명사의 흐름에 몸을 싣고 가다보면 우리는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종교가 합류하는 거대한 강을 건너게 된다.
그와 같은 지적 여행은 각 시기와 지역의 철학, 신학, 미술, 건축, 정치와 경제에 관계된 서적들의 탐색으로 이어진다. 무엇이 그토록 불가사의의 한 종교적 열정과 고독한 여행의 결단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20세기에 이르면 피터 홉커크가 잘 묘사했던 바대로 바로 이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서구 제국주의가 서로 영토전쟁을 벌이는 역사를 목격하게 된다.
실로 인류가 그간 살아온 세계사는 그 어느 하나 서로 동떨어져 움직여 온 것이 하나도 없다. 책을 찾는 여행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길에서 계속 가지치기를 하고 새로운 길을 발견하면서 우리가 습득하게 되는 지식의 계보는 확장되고 심화된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은 너무 빨리 하나의 전문분야로 지적 영토를 협소하게 만들어버리고 만다. 시간이 지나면 금세 낡고 못쓰게 될 정보검색형 교육이다. 어떻게든 빨리 써먹겠다는 조급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풍토에서 실크로드의 세계적 권위인 정수일 선생이 팔십 노구에도 불구하고 '실크로드 사전'을 펴낸 것은 기적에 가깝다. 이미 숱한 저술의 깊이를 확증한 그의 노고이기에 더욱 존경스럽다.
진정한 배움은 오랜 시간 익히고 다져나가는 과정을 기뻐하며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책을 찾는 여행에 걸리는 긴 시간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사회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깊은 나무가 된다.
/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