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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 <69> 한양도성을 깔고 앉았던 조선신궁



지난해 말 서울 남산식물원 터에서 한양도성 유구(사진)가 발견됐다. 총 연장 18.6㎞ 가운데 현재 12.3㎞만 남아있는 한양도성에 94.1m의 새 구간이 더해지는 순간이었다. 특히 일제 때 땅속에 파묻힌 뒤 근 100년 만에 빛을 보게 된 거라 의미가 남달랐다.

앞서 일제는 이 땅에 총칼만 갖고 온 게 아니었다. 애당초 민간 신앙이었던 '신도'를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민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종교로 재정립한 '국가 신도'도 이식했다. 국가 신도는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군국주의적 색채가 농후한 정신적 지배도구 그 자체였다.

그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 지난 1925년 서울 남산 중턱 사이에, 그것도 한양도성 성벽을 깔고 지은 '조선신궁'이었다. 일본 천황가의 시조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와 메이지유신과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이끈 '메이지천황' 등을 신으로 모셨고, 비슷한 시기에 지은 조선총독부를 경복궁 중심축에서 5.6도 기울여 조선신궁을 마주보게 했을 정도로 위상이 남달랐다.

물론 지금은 조선신궁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돌계단 일부가 옆으로 옮겨져 이용되고 있고 백범광장이나 안중근의사기념관광장 등 조선신궁 당시에 조성된 넓은 터들이 형태로나마 남아있는 정도다. 해방 이튿날 일본인 제관들 스스로 신위를 불태우고 건물을 철거해버린 탓이다.

서울시는 이번에 드러난 성벽 주변을 단장해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라고 한다. 다만 조선신궁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함께 안내할 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발굴 현장 주변을 걸으며 과연 한양도성 성벽이 왜 땅속에 묻히게 됐는지, 나아가 식민의 역사를 잊지 않게 하는 버팀목으로서 이 현장을 재조명하는 방법은 없을지 상상해본다.

/'다시, 서울을 걷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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