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이따금 감정이입 할 때마다 이 곳 저 곳에 기부를 했다. 보통은 기부할 때 '슬프다, 안 됐다, 미안하다' 등의 죄책감이나 기부대상이 불행에서 구제되길 바라는 간절함 같은 감정으로 비롯한 행동이었다. 한데 이번에 동참한 기부는 사뭇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아름다운 재단이 주최하는 '노란봉투'캠페인은 47억원이라는 손배소와 가압류를 판결 받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금캠페인이었다. 47억원이라니,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막막한 돈이니 한숨부터 나올 성 싶다. 한데 어떤 사람이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해보았다. 47억원이면 그저 엄두가 안 나지만 계산해보면 그 돈은 4만7000원씩 10만 명이 힘을 합하면 되는 그런 액수이기도 했다.
사실 4만7000원이라는 액수는 1만원, 5만원, 10만원이라는 액수에 익숙한 우리에겐 뜬금없는 숫자이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 특수함 때문에 '현실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한 아이엄마에게 그것은 아이 학원비를 아껴 보낸 4만7000원이었고 내게는 장바구니를 한 주 살림을 줄여서 보낸 4만7000원이었다.
그 와중에 가수 이효리씨가 꾸깃꾸깃한 4만7000원을 동봉한 친필편지를 아름다운 재단 측에 보내왔다. 사실 내가 기부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이효리씨의 영향이 컸다. 평소 선행을 많이 하는 유명인들은 1000만원이나 억 단위로 척척 기부하지 않던가.
이효리씨가 만일 거액을 기부했다면 와,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오히려 '내 일'처럼 느끼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한데 이효리씨가 달랑(?) 4만7000원을 보내주었기 때문에 그것은 바로 '내 일'처럼 느껴지며 아, 나도 같이 연대하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레 들 수 있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구제하는 형식의 시즌성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훌륭하지만 나는 모두가 어깨를 나란히 평등하게, 조금만 같이 애쓰면 해결이 충분히 가능할 법한 목적을 향해, 집중적으로 연대하는 일이 더 힘차 보이고 좋다. 현실주의자인 나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이고 왠지 집요한 목적의식을 체감시켜주는 '4만7000원'이라는 기부금액수가 이래저래 참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