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초등학교 입학식 날이다. 나의 딸도 신입생 중 한 명이다. 지난 주 많은 축하와 더불어 마침내 학부형이 되는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을 받았다. '닥치면 어떻게든 되겠지'주의인 나는 비장함 하나 없이 그저 유치원 졸업이라는 감상에서 못벗어나고 있었다.
당사자인 딸아이가 더 심경이 복잡했다. 밤마다 잠자리에 누워 심란해하던 딸아이가 며칠 전엔 적막 속에서 이렇게 외치더라. "금요일 지나고 다음 주 월요일에 바로 초등학생이 되는 게 말이 돼? 아니 세상에 이게 말이 되냐구. 난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잖아. 유치원에서 배운 것 밖엔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다구!" 엄마인 나는 빵 터졌다. 아무렴, 누구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삶의 다음 단계를 거치며 살아가야 하는 법. 게다가 유치원에서 배운 걸로 이미 충분하단다, 아가야.
한 때 세상을 휩쓸었던 로버트 풀검의 베스트셀러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가 생각났다. 줄거리는 기억이 안 났지만 이젠 빼도 박도 못하는 어른이 되니 우리가 정말로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유치원에서 배웠음을 진실임이 판명되었다.
친구를 괴롭히지 않을 것. 물건을 소중히 함께 나누어 쓸 것. 가급적이면 양보할 것. 실수를 했다면 먼저 용기내서 말할 것. 힘들어하는 친구를 도와줄 것. 내가 잘못하면 사과할 것. 자신이 어지럽힌 건 스스로가 치울 것. 오후에는 낮잠을 잘 것. 독서시간을 가질 것. 그림그리기나 공작을 통해 마음껏 자기표현을 할 것.
어른들의 인생에도 얼마나 고스란히 적용되는 배움들인가. 사회생활에선 타인에게 피해 안 주도록 노력하기. 내가 친 사고는 스스로 수습하기. 인간관계에선 공정할 것. 주변의 약자를 도울 것. 개인생활에선 충분한 휴식과 독서와 창의적 활동을 할 것.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기본은 이렇게 진즉에 유치원에서 배운 것들이었다. 이주에 한 번, 유치원선생님들이 부모들에게 보내는 소식지에도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이 씌여져 있었건만 나는 소풍날짜나 준비물만 체크하고 읽지도 않고 버렸었다. 깨달음은 매번 이렇게 뒤늦게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