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중세의 지식인들은 여행하는 자들이기도 했다. 홀로 서재에 파묻혀있기도 했지만 세상을 아는 것은 한계가 있기에 새로운 지식의 소문이 들리는 곳을 찾아 나섰다. 이들의 발걸음은 그래서 일종의 순례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했다.
이러한 지식 여행은 중세 서양에서만 보이는 건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의 헤로도투스가 쓴 '역사'도 현장 답사의 산물이었고, 중세 아랍 최고 역사가로 꼽히는 이븐 할툰의 '역사서설'도 긴 여정을 통한 성과다. 혜초 스님이 불법(佛法)의 고향 인도까지 다녀온 과정을 기록한 여행기도 다르지 않다.
훗날 에라스무스가 영국에서 '유토피아'를 쓴 토마스 모어를 만나고, 괴테가 이탈리아에서 깊은 감동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당대의 지식을 압축해서 마주할 수 있는 곳은 역시 대학이었고, 대학 또한 지적 갈망이 높았던 이들에게 여정의 목표가 되었다. 파리 대학을 비롯해 로마나 캠브리지 대학도 그런 이들의 순례지가 되었다.
그런데 유럽 최고 대학 출신들도 언제 가보나 했던 곳이 바로 스페인의 코르도바였다. 여기는 기독교와 이슬람교, 그리고 유대교의 전통이 공생하면서 서로 지적 자극을 주고받으며, 다채로운 문명의 자양분을 섭취하고 있었다. 유럽의 르네상스도 이 코르도바의 지적 활기에 힘입은 바 막대하다.
이 코르도바의 지적 활기를 흡수한 대학도시가 다름 아닌 살라망카다. '돈키호테'에는 '살라망카의 학사'라는 인물이 등장할 정도다. 흥미로운 것은 이 도시의 상징이 개구리라는 점이다. 이제는 도서관으로 쓰이는 고풍스러운 건물 입구 위에 개구리가 조그맣게 조각돼 있고, 책 위에 개구리가 학사모를 쓰고 뛸 기세를 보이는 관광 상품을 팔고 있는 것도 이 도시다.
살라망카의 개구리는 오랜 준비를 거쳐 때가 왔을 때 힘 있게 도약하는 지적 성취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 위한 준비기간은 동면(冬眠)과도 같아서 아무도 그 움직임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그 존재 자체를 망각하게 된다. 이건 당사자에게 있어서는 답답한, 자기존재증명이 부재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걸 이겨내는 것이 살라망카의 훈련이다.
깊고 넓은 준비가 없는 지식과 문명은 잠시 반짝하다 사라질 뿐이다. 지식을 소비상품으로 알거나, 순간의 인기에 몰두하는 사회는 그런 한계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살라망카의 개구리는 살라망카만의 개구리가 아니다.
/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