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세기 중엽 이슬람 제국의 규모는 가히 세계적이었다. 인도 근방에서 북아프리카, 그리고 스페인에 이르기까지 제국의 영토는 로마가 붕괴된 이후 유럽의 역사적 운명을 좌우할 지경이었다.
7세기 이전에는 지중해 로마의 세계에서 미미한 변방에 지나지 않았던 아라비아였다. 아라비아는 비잔틴과 페르시아 제국 사이에 있는 완충지대와 같았고 두 제국이 격투를 벌이면서 힘이 약해지자 그 틈을 파고 종교와 군사 대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던 것이다.
이슬람의 힘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문명의 기둥을 세우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이다. 비잔틴과 페르시아 문명의 수준은 아라비아의 수준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슬람은 보통의 정복자들이 했던 것처럼 문화를 파괴하고 약탈한 것이 아니라 고등문명의 영양분을 자신의 것으로 최대한 섭취하기 위해 진력을 다했다. 이슬람은 지적 품격을 갖춘 문명이 되어갔던 것이다.
이러면서 아랍어는 국제어가 되었다. 천일야화 '아라비안나이트'를 봐도 중앙아시아 쪽에 가까운 사마르칸트에 그 기원을 가지고 있지만 문학의 위치를 갖게 된 것은 아랍어 덕분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그리스의 철학과 과학 서적은 당시 기독교의 일파였던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학자들에 의해 거의 대부분 아랍어로 번역됐다. 르네상스의 자양분이 여기서 마련된다. 중국과 인도로부터는 특히 십진법, 0을 받아들여 더욱 발전된 대수학을 만들어 냈다. 12세기 중세 유럽은 이에 비해 낙후한 지적 수준을 면치 못한다.
오늘날 이슬람 세계는 진통을 겪고 있다. 미래를 새롭게 세워야 하는 전환기에 서 있다. 그러나 어디 그런 고민이 이슬람에만 있는가? 그런데 이들에게는 오랜 세월 동안 축적해온 문명의 자신이 풍부하다. 그리고 그 지혜로 오늘의 세계를 진중하게 상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슬람 문명에 무식하거나 멸시한다. 그건 우리의 무지일 뿐이다.
이븐 할툰의 '역사서설'같은 세계적 고전이자 명저가 오랫동안 품절인 채로 지식사회 안에서도 읽히지 않는 것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아싸비야"라는 말로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정신의 근원에 대한 그의 성찰은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주제다. 그럼에도 이슬람의 정신세계와 문명에 대한 배움은 너무도 방치돼 있다.
이 나라 지식지도는 다시 써져야 하지 않을까? 서양의 이론에 일방적으로 기대는 습관이 너무도 깊다.
/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