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와인 메이커'가 개발됐다는 소식이다. 이 기기에 물과 와인의 재료가 되는 키트를 넣고 3일만 기다리면 와인이 된단다. 액면 그대로라면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그러나 진정한 와인인지는 의문이다.
와인 마니아는 익히 아는 사실이지만 와인 양조에는 물 한 방울 첨가되지 않는다. 와인은 1년 동안 공들여 재배한 포도로만 만든다.
와인 한 병은 통상 750ml다. 한 병의 와인을 만드는 데는 포도 1Kg이 들어간다. 포도는 무게의 비중으로 볼 때 10% 내외의 껍질과 5% 정도의 씨, 나머지가 과육으로 구성된다. 물론 재배지역과 품종에 따라 그 비중은 조금씩 달라진다.
포도 껍질은 발효 과정을 통해 와인에 색깔을 입히고 탄닌을 우려낸다. 씨는 지방질과 탄닌 성분이 강하나 대부분 제거된다. 결국 80~85%의 과육으로 와인을 만드는데, 발효 과정에서 당분이 알코올과 탄산가스로 분해되고 가스는 공중으로 날아간다. 발효와 숙성, 병입 과정에서 증발 또는 찌꺼기 등의 여과를 거쳐 또 일정부분이 줄어든다. 그 나머지가 750ml의 와인으로 탄생된다. 의도적이었든 우연이었든 와인 한 병이 750ml로 만들어진 이유라면 이유다.
포도의 과육은 대부분 수분으로 이루어진다. 이 수분은 1년 중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익을 때까지 100일에 걸쳐 껍질 속에 쌓인다. 곰팡이가 침투하면 썩어 떨어지고(물론 와인에 유익한 곰팡이도 있어서 이를 노블롯이라고 한다) 제대로 영근 과실만 수확된다. 이보다 더 순수한 수분은 없다.
과육은 또한 미네랄과 영양소의 창고이기도 하다. 1년 동안 포도나무의 뿌리에서 뽑아 올린 각종 양분은 포도 알에 농축된다. 포도나무가 자라는 토양과 토질에 따라 쌓이는 양분의 종류도 제각각이다. 철분 등 금속 성분이 많은 토양이나 조개 화석이 많은 곳에서 만들어진 와인은 미네랄 향이 강하다. 진흙과 자갈토양에서 만들어진 와인은 대체로 흙냄새와 나무향이 진하다. 뉴질랜드 등 녹색지대의 소비뇽 블랑 와이트와인은 유난히 풀향기를 내뿜는다. 프랑스 론 지방에서 자란 시라 품종은 미스트랄이라는 바람 때문에 포도 알이 작고 껍질 비중이 높다. 전세계에서 재배되는 카베르네소비뇽이나 이탈리아의 네비올로 품종도 껍질이 두껍다. 껍질이 두꺼운 포도종은 탄닌이 풍부해 오랜 기간 숙성이 가능한 좋은 와인이 양조된다.
와인이 술이면서도 심장병 등 건강에 좋은 이유는 바로 자연이 만들어 낸 순수함 때문이다. 그래서 와인 제조업자들도 자연의 가치를 그대로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재배 단계부터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발효 등 양조 과정에서도 설탕 추가를 엄격히 제한하는 등 인공의 가미를 최소화한다. 요즘 부쩍 바이오다이나믹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와인을 기계로 만든다? 와인의 맛을 낼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프랜치 패러독스'가 표현하듯 우리 몸의 건강까지 챙겨주는 그런 '자연이 만들어낸' 와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