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세기가 넘도록 이 땅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우리네 곳곳에 다양한 흔적들을 남기고 있다.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제일시장 골목을 걷다 보면 만나는 '부대찌개'가 그 단적인 예다.
부대찌개라는 명칭은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잔반으로 찌개를 끓여 팔기 시작한 데서 유래하는데, 제일시장의 수십 년 된 가게들에선 굳이 메뉴판에 적혀 있지 않더라도 소세지와 스팸 그리고 다진 고기를 넣은 부대찌개를 먹을 수 있다. 특히 지난 2006년 이래 해마다 부대찌개 축제까지 벌여오는 걸 보면 부대찌개가 마치 의정부의 상징인양 느껴진다.
그런데 부대찌개의 역사는 곧 눈물의 역사이기도 하다. 지난 1964년 1면 톱으로 실린 '허기진 군상'이라는 기사를 보면 드럼통에 담긴 음식물을 사가는 사람들의 사진에 다음과 같은 글이 덧붙어 있다.
"먹는 것이 죄일 수는 없다. 먹는 것이 죄라면 삶은 천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돼지 먹이로 사람이 연명을 한다면, 식욕의 본능을 욕하기에 앞서 삶을 저주해야 옳단 말인가. 담배꽁초, 휴지 등 별의별 물건이 마구 섞여 형언할 수 없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이 반액체를 갈구해야만 하는 대열! 그들은 돼지의 피가 섞여서가 아니다. 우리의 핏줄이요 가난한 이웃일 따름이다."
부대찌개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는, 즉 돼지에게나 먹일 '꿀꿀이죽'을 인간이 먹을 수밖에 없던 한국전쟁 뒤 가난의 실상을 고발하고 있는 기사다.
물론 지금의 부대찌개에는 미군이 먹다 남긴 재료를 재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1966년 방한한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의 성을 따 '존슨탕'이라고도 부르는 부대찌개는 여전히 한국전쟁으로 인한 가난과 궁핍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 중 하나다. 음식은 음식 그 자체로서만이 아니라 지나간 우리시대를 떠올리게 해주는 역사의 한 단면으로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