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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인문학산책]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베르제 선생의 강아지는 하늘의 푸르름을 쳐다본 적이 없다.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작가 아나톨 프랑스가 남긴 말이다. 물론 강아지들을 비하하기 위한 주장은 아니다. 모든 것을 경제적 가치로만 환산하는 세상에 대한 한 마디였다.

한국 인문교육에 충격을 주고 있는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 도정일의 산문집 '쓰잘데 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이 얼마 전 나왔다.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우리가 어느새 '여름 저녁의 노을, 눈 내린 숲의 아름다움'보다는 '돈 되는 일'에만 꽂혀 사는 모습에 대한 일깨움으로 그득 차 있다. 베르제 선생의 강아지 이야기도 그 안에 담겨 있는 한 토막이다.

'정신을 작은 상자에 가두는 교육'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아이들이 자라는데 왜 시간이 걸리고 과일은 왜 천천히 익고 씨앗들은 왜 겨울 눈 더미와 지층 사이에서 서서히 싹 틔울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일까? 이걸 깊이 생각하지 못하는 사회에 대해 도정일은 시인 정현종의 표현을 빌려 '짐승스러운 편리의 노예'라고 부른다.

그는 책 읽기 운동을 펼친다. 책을 읽지 않는 머리에서 무엇이 과연 나오겠는가라는 거다. 오래 전 시인 김수영도 "신문만 읽는 머리에서 무엇이 나오겠는가?"라고 탄식한 바 있다. 여기서 방점은 '신문'이 아니라 '신문만'이다. 단명하기 짝이 없는 정보와 들뜬 여론의 껍데기를, 마치 알지 않으면 뒤쳐질 세상의 대세로 인식하게 만들고 생각의 작동을 점차 마비시키는 대중매체의 늪에 빠져 있는 현실에 대한 질타다. 대중매체는 민주주의의 힘인데, 오늘날 상황은 그 반대로 치닫고 있다.

성서에는 한 율법학자에 대한 예수의 비유가 나온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란 잘 훈련된 율법학자와 같다면서, 그는 자신의 곳간에서 새 것과 낡은 것을 가려내는 자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누구의 눈에나 새것과 낡은 것이 어느 것인지 자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교육은 무슨 훈련을 하고 있을까? 혹시 베르제의 강아지를 기르는 일에 온통 힘을 쏟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작 쓸모 있는 것을 쓸데없는 것으로 내팽개쳐놓고, 진즉에 버려야 좋은 것을 고귀하다고 추앙하도록 하고 있지는 않을까?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만 제대로 가지고 있어도 교육은 이미 절반 이상 성공이다.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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