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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 <73>우이령길의 상흔



얼마 전 서울 우이령길을 걸었다. 산갈나무와 단풍나무, 밤나무, 잣나무 등 일일이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는 등 북한산 내 어느 지역보다 자연 보존 상태가 양호했다.

그런데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우이령길은 걷고 싶다고 아무 때나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지난 1968년 벌어진 뜻밖의 사건, 이른바 '1·21사태' 탓이다.

당시 휴전선을 넘은 김신조 등 북한 특수부대원 31명은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만 이동하는 식으로 남하를 계속했다. 그렇게 해 청와대 코앞까지 다다르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사흘, 놀란 것은 박정희 정권만이 아니었다. 이틀 뒤인 1월 23일에는 원산 앞 바다에서 감청 중이던 미 해군 함정 푸에블로호가 북에 나포되면서 한반도는 그야말로 전쟁 직전의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향토예비군 창설'과 '주민등록제 강화'로 연결됐다. 동시에 정부는 백악산과 인왕산에 일반인의 접근을 금지한 데 이어 우이령길까지 폐쇄해버렸다. 백악산과 인왕산은 청와대의 직접적인 경호를 위해, 우이령길은 만약 북에서 백두대간과 한북정맥을 타고 내려올 경우 청와대 뒷산인 백악산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상태로 41년이 흐른 지난 2009년, 군사분계선 관리가 안정화되면서 백악산이 개방됐고 우이령길 출입도 예약만 하면 가능하게 됐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여전히 중단된 상태고 시험운행 이벤트를 벌였던 남북간 동해선 철도는 여태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남쪽의 안보 자신감은 높아졌지만 남북 사이에 도는 냉기는 여전한 듯하다.

/'다시, 서울을 걷다' 저자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Copyright ⓒ 메트로신문 & 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