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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놀로그] 단골의 조건



아침에 아이를 초등학교에 데려다주고 바로 카페로 '출근'해 오전에 바짝 글작업을 한다. 몇 달 전까지는 집 앞 길 건너 언덕의, 오십대의 과묵한 남자 주인장이 혼자 성실하게 운영하는 카페에서 글작업을 했다.

그런데 그 카페가 몇 달 전 문을 닫게 돼 한동안 망연자실. 일단 집주변부터 대안을 찾으려했지만 어떤 카페는 산만했고 어디는 음악 선곡이 별로였다. 어디는 테이블이 불편했고 어디는 주인이 말을 너무 많이 걸었다. 그러다가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가야할 만큼 멀지만 나같은 사람이 작업하기 최적인 카페를 알게 돼 어느덧 나는 그 집의 단골이 됐다.

단골이 된다는 것의 의미는 우선 내가 그 곳의 주인과 인간적인 궁합이 맞아야 한다. 자주 봐서 불쾌하거나 불편하다면 왜 가겠는가. 서로 많은 대화를 할 필요도 없이 가게 인테리어나 손님들을 다루는 모습, 최소한의 대화만 나눠봐도 취향과 가치관의 궁합을 알 수 있다.

둘째, 주인이나 가게에 대해 호감을 갖고, 만나면 호상간에 반가워하지만 주인과 손님이라는 선을 절대 넘지 않고 거리 감각을 조절할 만큼 '어른'이어야 한다. 친해졌다 해서 주인이 손님을 친구 대하듯 해도 곤란하고 손님이 주인에게 가게의 규율을 무시한 무리한 요구를 해서도 안 된다.

셋째, 단골의 관계를 잘 유지하려면 티 안 나게 서로를 배려하는 센스가 있어야 한다. 가령 단체손님이 한꺼번에 들어왔다면 넓은 테이블 구석에서 일하던 나는 그들이 가기까지 다른 뒷구석 자리로 비켜간다. 역으로 갑자기 비가 오면 주인은 내게 슬며시 우산을 내밀고 내가 끼니도 거른채 시간 가는 것도 모르고 일하고 있으면 아무 말 없이 요깃거리를 내주기도 한다.

한국에는 얼마나 챙겨야 할 인연들이 많은가. 학연·지연·혈연 등 의무가 움직이는 인연들에 비해 나와 참 잘 맞는 공간과 사람들을 자신의 예민한 안목으로 찾아내고 그것을 잘 유지하는 일은 얼마나 삶을 질적으로 풍요롭게 만드는지 모른다.

똑같은 소비라 하더라도 판매자와 소비자 관계에서 그저 내가 돈을 지불하니까 '고객님'으로 겨우 매뉴얼대로 대접받고 있다는 건 조금 쓸쓸한 게 아닐까.

/임경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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