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지금 세월호 참사로 열흘이 넘게 패닉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처구니없게 희생된 수많은 인명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보내면서 온 나라가 망연자실이다. 유례없는 대형 참사가 일어난 이후 총체적 부조리가 속속 드러나면서 온 국민이 비탄에 빠졌다. 우리들의 서글픈 자화상이 민낯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끔찍한 대형 참사를 수 차례 겪고도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1990년 서해 페리호 사고 이후 성수대교 붕괴, 대구지하철 가스 폭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겪은 우리는 안전 불감증을 조금도 치유하지 못했다. 이번 참사는 두말할 나위 없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적당주의, 무책임의식으로 빚어진 인재(人災)의 극치다.
우리는 '세계 속의 한국'을 자랑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만년 후진국'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해줬다. 위로는 정치권과 재계, 그리고 교육계 등 사회 지도층으로부터 아래로는 일반서민에 이르기 까지 기본윤리의식이 잡혀 있지 않다. 빠른 시간에 경제성장은 이뤘지만 모두가 천민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이번 참사에서 보여주듯이 고위 공직자가 희생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다가 옷을 벗기도 했고 어느 지방자치단체선거 후보자는 유족대표로 둔갑하다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또 어느 장관은 부적절한 처신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여기에다 인터넷상에는 근거 없는 악성 괴담 유언비어와 모욕적인 내용이 수두룩하다. 카카오스토리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는 소름끼칠 악성 글이 판을 치고 있다. "수능 경쟁자가 줄었다" "유족들은 보상금으로 해외여행갈 생각을 하니 좋겠다"는 것은 고사하고 음모론을 제기하는 내용도 있다. "정부가 선거 때문에 시신을 방치하고 있다" "사고는 국정원이 사주한 사고일 가능성이 크다" "세월호 사고는 미군 잠수함 때문"이라는 유언비어까지 유포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6천 달러로 선진국의 문턱을 넘보고 있는 우리 국민이 이 정도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지성인 노벨 문학 수상자 가오싱젠이 "한국은 분명 역동적인 나라이지만 정서적인 빈곤을 이겨내지 못하면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충고한 말이 새삼 실감난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 국민이 마음가짐 하나만이라도 반듯해진다면 조그만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