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상으로 전세계에서 자라는 포도 품종은 수천 가지다. 이 중 와인을 만드는 포도는 비티스 비니페라 등 몇 품종으로 한정된다. 먼저 구세계 와인 생산국의 상징적인 포도 품종을 알아보자.
전 세계 와인의 메카 프랑스는 국제 품종의 집합체다. 카베르네 소비뇽, 피노 누아, 시라, 샤르도네 등 국제품종의 원조가 워낙 많아 대표 품종이 뭐라고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반면 와인 세계에서 프랑스와 쌍벽을 이루는 이탈리아만 해도 사정은 달라진다. 이탈리아 역시 토착 품종이 1000개를 넘으며 양조에 쓰이는 포도 품종만도 무려 400가지에 달한다. 이렇게 많아도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포도는 확실히 있다. 바로 산지오베제와 네비올로다. 산지오베제는 우리의 막걸리와 같은 존재인 토스카나 '키안티' 와인을 빚는 데 쓰인다. 또한 이탈리아 내에는 산지오베제와 같으면서 다른 이름을 가진 품종(클론이라 한다)이 다수 존재한다.
네비올로는 전세계 포도종 중 껍질의 두께와 풍부한 탄닌 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조건만 맞으면 100년 이상 숙성시켜도 왕성한 탄닌을 자랑하는 강한 품종이다. 네비올로는 이탈리아의 최고 와인인 피에몬테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를 만들어 냈다.
스페인의 독자 품종은 템프라니요다. 리오하 지역에서 주로 재배된다. 과거에는 프랑스의 보르도에서 처럼 블렌딩을 주로 했으나 최근에는 템프라니요 만으로 만든 와인도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다.
이베리아 반도의 또다른 나라 포르투갈은 주정강화 '포트' 와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포르투갈도 토착 품종이 워낙 많지만 포트와인의 주 재료인 또우리가 나씨오날 품종이 그래도 이 나라를 상징하는 포도가 아닐까 싶다.
화이트 와인의 왕국 독일은 누가 뭐래도 리슬링 품종이다. 라인강을 따라 재배되는 이 포도종으로 상큼하고 가벼운 와인에서 당도 높은 늦수확 와인, 아이스 와인까지 만들어 낸다.
그밖에 화이트 와인에서 확실한 자기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오스트리아는 그뤼너 벨트리너, 세계 3대 귀부(Noble Rot)와인에 꼽히는 '토카이' 와인 생산국 헝가리의 푸르민트 품종도 꼽힐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