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는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공기방울이 되어 하늘로 떠오른다. 그런데 그것은 모든 것이 허무하게 사라진 잔해의 거품이 아니다. 자신을 배신한 왕자를 용서하고 자기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길을 포기한 채, 선한 마음으로 사랑의 기운이 되어 세상에 퍼져나가는 시작이었다. 슬프지만 착한 사랑의 여진이 마음을 아련하게 한다.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어머님 뱃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힘민복 시인의 〈성선설〉이라는 제목의 시다. 생명은 자기 안에서 스스로 의미 있는 것들을 찾아내 연결하고, 그것이 하나의 또 다른 진화된 생명의 조직과 능력이 된다는 것은 오늘날 생명과학이 주목하는 바이다. 물론 꼭 열 개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 몸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그 마음이 담겨지게 된다는 대목이다.
인간의 뇌는 우리의 마음이 등불을 켜고 찾아나서는 산맥과 계곡이며 강과 바다이다. 기억의 창고를 벗어나면 보이는 뇌 속의 풍경은 대부분 아직도 우리에게 발을 들여놓지 않은 미답(未踏)의 세계이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과 몸에는 우리가 살아온 흔적과 함께, 우리가 살아갈 미래의 지도가 펼쳐져 있다. 그 뇌 안에서 마음이 밖으로 뿜어낸 공기 속에는, 바로 그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섞여 움직이면서 빛을 낸다.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며 쓴, 요즈음 사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함민복의 시 의 한 대목이다. "쏟아져 들어오는 깜깜한 물을 밀어냈을/가녀린 손가락들/나는 괜찮다고 바깥세상을 안심시켜 주던/가족들 목소리가 여운으로 남은/핸드폰을 다급히 품고/물속에서 마지막으로 불러보았을/공기방울 글씨/엄마/아빠/사랑해!/아, 이 공기,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아 그러고 보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공기방울에는 무수한 글씨가 쓰여 있었다. 그 역시 인어공주의 공기방울처럼 허무하게 소멸된 생명의 포말(泡沫)이 결코 아니다. 엄마 뱃속에서 입었던 열 달의 망각될 수 없는 은혜에 대한 기억이 마침내 열 손가락이 되었듯이, 바로 그 손가락으로 남긴 글자들이 우리의 마음과 몸속으로 들여 마셔진다. 죽어간 아이들이 세상에 남긴 눈에 보이지 않는 편지들이다. "사랑해!" 그렇게 쓰인 이 글자의 힘으로 우리의 매일은 소중하고 아름다워진다. 그건 무엇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생명의 활자다. 미안함을 넘어서는 내일을 기도하는.
/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