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떠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가던 말레이시아항공 MH17편 보잉 777 여객기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미사일을 맞은 뒤 추락해 승객 283명과 승무원 15명이 전원 사망하는 끔찍한 비극이 일어났다. 민간 여객기가 격추돼 발생한 사망자 규모로는 역대 최대다.
한국인 탑승자는 없었지만 189명의 자국인이 숨진 네덜란드와 29명이 탑승한 말레이시아, 27명의 호주 등 세계 각국은 슬픔과 충격에 휩싸였다.
미국과 서방 당국은 여객기 피격이 우크라이나 내 친 러시아 반군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결론을 내리는 분위기다. 여객기에 대한 공격에는 러시아제 SA-11 지대공 미사일이 동원된 것으로 봤다. 하지만 러시아와 친 러시아 반군 등은 우크라이나 정부의 소행이라며 이를 부인하고 있다.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등의 주도로 객관적인 국제조사가 필요하다. 유엔 역시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해 15개 이사국 만장일치로 이러한 내용의 공동 성명을 채택하고, 국제조사단의 현장 접근과 자유로운 조사를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미 사고 현장은 우크라이나 반군 주도로 심하게 훼손된 것으로 알려졌다. 외신은 반군은 물론 인근 주민들까지 사건 현장에 몰려들어 유류품들을 모두 헤집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반군이 블랙박스(비행기록·음성기록장치)를 다른 곳으로 옮겼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현장의 시신들은 섭씨 30도가 넘는 날씨에 빠르게 부패해 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반군은 여전히 현장을 통제하면서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등 국제 조사단의 접근을 일부만 허용하는 실정이다.
러시아나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 반군 세력이 이번 사건에서 떳떳하다면 현장 통제를 접고 국제 조사단 활동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원인을 규명하고, 이들의 소행이 사실로 들어날 경우 테러단체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해야 한다.
네덜란드 국민은 희생자의 시신이 들판에 내버려져 있는 사진을 보고 분노하며 전쟁이라도 벌일 태세다. 러시아가 자꾸 문제를 회피한다면 네덜란드, 말레이시아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을 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