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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한국인은 왜 보신탕을 먹을까?

윤덕노





고대 동양에는 보신탕 문화가 보편적이었지만 지금은 유독 한국과 베트남에만 남아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역사적 배경도 있다. 보신탕의 뿌리는 중국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기원전 676년, 복날 개를 잡아 제사를 지낸다고 했으니 복날 보신탕의 기원이다. 뿐만 아니라 개는 중국에서 제왕의 음식이었고 하늘에 바치는 제물이었다. 주례(周禮)에는 개가 말, 소, 양, 돼지, 닭과 함께 제왕이 먹는 여섯 가지 고기에 포함돼 있다. 유교에서는 개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하지만 6세기 남북조시대 무렵부터 중국 문헌에서 개식용의 기록이 사라진다. 농경민족인 한족이 북방의 유목민에게 쫓겨 남쪽으로 밀려났을 때다.

유목민에게는 개식용의 풍속이 없다. 유목민에게는 개가 가축을 지키는데 절대 필요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중국에서 보신탕이 사라진 이유로 1,000년이 넘는 유목민족의 지배를 꼽기도 한다.

6-7세기 중국의 북쪽인 유목민인 선비족이 점령했다. 이어 당나라를 제외한 10세기 이후는 거란족의 요나라, 여진족인 금나라가 다스렸다. 다음이 몽고의 원나라고 명나라를 거쳐 여진족인 청나라의 통치가 이어졌다. 그러니 지배민족인 유목민족의 영향을 받아 보신탕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보신탕이 사라진 시기도 비슷하다. 서기 675년, 덴무(天武)일왕이 소, 말, 개, 닭, 원숭이는 먹지 말라며 육식 금지령을 선포한다. 바꿔 말하면 이전까지 개는 물론 원숭이도 먹었다. 일본인이 고기를 다시 먹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 명치유신 이후다. 1,200년 만에 다시 고기를 먹는데 굳이 개고기를 먹을 이유가 없었다.

반면 우리는 보신탕을 배척하지 않는 농경사회였고, 전통 유교사회였다. 게다가 고려 때 몽고의 영향 이외에는 유목민족의 음식문화를 강요당했던 적도 없다. 베트남 역시 우리와 역사적 배경이 비슷하다.

지금처럼 개가 반려견도 아니었기에 보신탕 문화가 사라질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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