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호사협회는 특수한 지위에 있다. 우리나라는 법조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높고 상대적으로 다른 전문직보다 우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변협의 지위는 다른 직역단체와 다르다.
변협은 특이하게 직역단체이면서 '변호사 징계권'이라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거기에 변협은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해 '정부정책감시'를 한다며 다소 배포 큰 활동을 자신들의 역할이라 주장한다.
최근 세월호 정국에서 변협의 역할은 컸다. 진보단체에서는 군사정권시절 이후 최고의 활약상이라는 평가도 나올 정도다. 세월호 유가족 대책위의 입장을 담은 세월호 특별법을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논란의 중심인 수사·기소권이 포함된 법안이 바로 변협이 유가족을 위해 만든 '4·16 특별법'이다. 유가족들은 변협이 만들어준 그 법안대로 해달라고 여야에 요구하고 있다.
지난 1일 변협 전 회장단으로 구성된 원로 변호사들이 위철환 현 변협 회장을 만났다. 원로들은 수사·기소권은 전체 변호사 의견이 아니라며 의견 청취도 없었던 점을 지적했다.
핵심은 여기에 있다. "여당에서 위헌적이라며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수사·기소권이 왜 변협의 법안에 들어 있느냐", "변호사들은 법에 가장 밝은 사람들인데 '위헌적'이라는 법리 논쟁이 벌어질 일을 왜 자초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에선 변협 지도부와 민변(민주주의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밀접한 관계를 언급하기도 했다. '4·16 특별법'을 만들고 세월호 법률지원단에서 중추 역할을 하는 변호사들 상당수가 민변 변호사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5월19일 변협이 공식적으로 유가족 대책위와 법률 지원에 관한 MOU를 맺기 전까지는 민변 이름을 내걸고 활동했다. 정치 편향을 이유로 일부 유가족이 반대해 공식적으론 법률대리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변협이 법률대리인이 된 이후, 세월호 법률지원단에 합류해 일하고 있다.
변협은 모든 변호사가 강제적으로 가입하게 돼 있는 단체다. 민변은 정치적으로 뜻이 같은 변호사들이 모인 임의 단체다. 민변 소속 변호사들도 모두 당연히 변협 소속이다. 여기에서 혼란이 시작됐다.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유가족들을 돕는 과정에서 '변협 소속'으로 이름 앞의 '소속'이 5월 중순부터 바뀌었다.
변협 원로들의 변협 방문은 민변과의 기싸움이다.
변협은 지난 10여 년간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직역 이기주의에만 빠진 채 직역 방어에만 급급했고, 비주류 변호사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그 것이 현재 변협의 지도부를 만들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의 조직이 또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다. 비주류가 지도부를 잡고 있고 주류가 뒤에서 지켜보는 형국이다. 어느 곳이나 주류·비주류는 있고, 비주류가 주도권(?)을 잡았을 때 가장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진다. 변협이나 새정치연합이나 지금이 바로 그 때다. /유보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