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원내대표로 뽑히며 큰 기대를 줬던 박영선 의원이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고 박순천 민주당 당수 이후 여성 정치인으로 야당 당대표 역활을 맡은 건 박 의원이 유일하다. 최초의 여성 법사위원장, 두 번째 비(非)법조인 법사위원장이라는 기록도 보유한 그였다.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과 여성 정치인으로서 대조를 이뤄 존재감이 커졌다. 정부 여당과 야당의 사령탑으로 각각 비교되는 영광(?)까지 짧게 누렸다. 일각에선 박 의원이 내년 전당대회를 앞두고 스스로 리더십을 보여주려는 욕심이 지나쳤다고 말한다. 의욕적으로 세월호 특별법 협상을 이끌었는데 두 차례나 비토당하고, 비대위원장으로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영입이 좌절되며 '삼진아웃'됐다는 평가다.
그가 늘 강조하던 '철통 보안'에 스스로 발목 잡혔단 비판도 있다. 기자 출신으로 정치인들에게 정보를 캐냈던 그는 역설적으로 보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자들에게 정보를 흘리는 보좌진을 색출하라며 정보 유출을 막았다. 대표실 문에 추가 칸막이를 설치하고 내부 화분에 도청 장치나 녹음기 설치 우려가 있다며 화분을 모두 복도에 내놓기도 했다. 의심이 지나치다는 볼멘소리가 높았다.
여기에 '감정 정치', '여성 정치'의 한계가 드러난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그동안 원내대표직과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이라는 사실상의 대표권한대행직을 수행하며 박 의원이 보여준 모습은 적잖이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특히 회의 중 눈물을 보이고 큰 소리로 화를 내며 회의를 진행한 것에 대해 부정적 평가가 많다. 비공개 회의 등에서 그런 장면이 여러번 연출됐지만 당 안팎에선 쉬쉬했다.
이같은 부정적 면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비교됐다. 박 대통령의 불통 리더십을 닮았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거슬리는 사람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으려 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한다는 면에서 여성 정치인의 한계라고까지 폄하하는 이들도 있었다.
김옥선 전 의원이 남장까지 하고 다니며 남성적인 언어와 행동으로 활동했던 점과 비교도 됐다. 김 전 의원의 남장이 한국 정치계에서 먹혔던 것이 우연이 아니란 얘기다.
만약 박 대통령까지 실패한 정치인으로 남는다면 우리 사회에 여성 정치의 입지는 더 좁아진다. 박 의원이 개인적 감정을 추스르고 진보 성향 여성 정치인의 대표란 생각을 품고 책임감 있게 행동해주길 바란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선장없는 배가 됐다. 박 의원은 원내대표와 비대위원장을 맡게 되면서 위원장직을 '독배'라 표현했다. 7·30 재보궐 선거 참패 후 지도부 공백 상태에서 본인에게 떠넘겨진 상황을 "독배를 마시고 죽겠다"고 말했다. 다음 차례로 독배를 마실 정치인이 누가 될지가 현재 여의도의 가장 큰 관심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