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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러시아공사관 첨탑은 들려주지 않는 이야기



서울 정동은 사대문 안에서도 상당히 고즈넉한 동네다. 특히 돌담길과 서울시립미술관도 있어 주말이면 연인이나 가족들로 붐비곤 하는데 정동로터리쯤에 다다르면 유독 눈에 띠는 건물 하나를 만날 수 있다. 금색 공을 머리에 이고 있는 듯한 러시아대사관이다. 지난 2002년 완공된 건물로 마치 '정동의 크레믈린'인양 주변을 압도하는 스케일에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육중하고 견고해 보인다.

반면 거기서 직선 거리로 4백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옛 러시아공사관 터에 가면 사뭇 다른 느낌을 받는다. 한국전쟁 때 파괴된 이후 지금은 첨탑만 덩그러니 남아 있어 황량함이 더한데, 이 첨탑은 구한말의 정동이 얼마나 가쁜 역사의 풍랑을 거쳐왔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다.

지금이야 주변이 건물들로 빼곡해 잘 알 수 없지만 러시아공사관이 들어선 지난 19세기 후반만 하더라도 이 언덕은 미국과 영국 등 경쟁국의 공관들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더 없이 훌륭한 입지였다. 그것은 곧 당시 러시아의 위세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이기도 한데, 명성황후가 살해된 을미사변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과 순종이 피신한 곳이 러시아공사관이었다는 데에서 명확해진다. 1896년부터 약 1년간 임금이 아관(俄館)으로, 즉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이라 부르는 사건이다.

하지만 냉혹한 국제정치 현실에서 러시아도 여느 강대국과 다를 게 없었다. 러시아와 일본은 아관파천 석 달 뒤부터 4차례에 걸친 비밀협상을 벌여 이른바 '웨베르-고무라 각서'와 '로바노프-야마가타 각서'를 주고받는 등 장래에 필요할 경우 러일 양국이 조선을 공동 점거하기로 밀약했다.

그 사정을 알 길이 없던 조선 정부는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 머문 1년 동안 압록강 연안과 울릉도의 삼림 채벌권, 경원과 종성 광산의 채굴권, 인천 월미도저탄소 설치권 등 다양한 이권을 러시아에 내주었다. 결국 아관파천을 통해 고종의 안위는 잠시나마 보장받을 수 있었지만 조선의 국력은 나날이 야위어만 갔고 열강의 경제적 침략은 더욱 심화되어 갔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가 사실상 무기한 연기되어 시끌시끌한 요즈음 언뜻 낭만적이고 한적한 동네 같아 보이는 정동의 러시아공사관 터를 다시 찾았다. 한쪽에서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뿐. 한때 러시아공사관이 있었다는 안내판만 설치되어 있을 뿐 그 내막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다시,서울을 걷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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