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분야에서 11월에 가장 먼저 떠올리는 행사와 축제가 보졸레누보 출시다. 매 해 11월 셋째주 목요일 0시 판매 시점부터 이듬해 봄까지 마시는 보졸레누보는 프랑스 보졸레 지방의 간판 상품이다. 와인 출시를 앞두고 사흘 전 쯤부터 열리는 축제에는 각국의 와인 마니아들이 몰려든다. "보졸레 보졸레 보졸레~"를 연호하며 노래를 부르고 진행하는 만찬 행사는 손꼽히는 국제적 축제다.
보졸레는 과거 부르고뉴의 한 지역이었다. 부르고뉴는 최북단 샤블리에서 시작해 꼬뜨 도르, 꼬뜨 살로네즈, 마꼬네를 거쳐 최남단 보졸레까지 길게 이어진다. 그러던 보졸레가 부르고뉴와 관계없는 독자적인 와인산지임을 새삼 강조하고 나섰고 현재는 그렇게 받아들여진다. 뒷방 머슴 취급을 받았던 데 대한 반발이라는 견해도 있었으나 '보졸레만의 와인'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한 것이 주된 요인일 것이다. 실제 포도품종, 가지치기법, 발효법, 토양, 기후 등 여러 면에서 보졸레는 부르고뉴와 다르다.
보졸레는 가메(Gamay) 품종으로 와인을 만든다. 부르고뉴도 가메를 주로 재배했으나 14세기 제후였던 필립이 가메를 모두 거세하고 삐노누아 품종으로 대체했다. 그러나 보졸레 만큼은 가메를 존속시켰다. 그 이유는 토양 때문이다. 보졸레 토양은 화강암과 편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메가 자라는 최적의 토양이 바로 화강암 지대다.
가메 품종은 사실 품격있는 와인을 만들기에는 다소 모자란다. 와인은 분홍색이 감도는 자주색을 띠고 체리 등 과일 내음이 풍부하다. 탄닌이 강하지 않아 다른 레드와인에서 보이는 묵직함이 모자라 일반인이 마시기 용이하다. 화강암에서 연상되는 '태양빛을 받아 밝게 반짝이는' 이미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보졸레 와인은 무늬만 레드일 뿐 오히려 화이트와인에 가깝다. 스테이크와 같은 육류보다는 연어와 같은 붉은 살 계통의 생선과 더 잘 어울린다.
보졸레였기에 가메를 재배했고 와인 양조 기술을 발전시켰다. 가메는 보졸레가 '전세계가 인정하는 와인 브랜드이자 산지'로 부각되도록 보답했다. 환상적인 궁합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