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 자락의 소월길을 지나다 보면 재미있게 생긴 시내버스 정류장에 놀라곤 한다. 지난 2011년 말 서울시가 '아트 쉘터(Art Shelter)'라는 이름으로 기획한 사업의 결과로, 모두 5개의 버스정류장이 예쁘고 산뜻하게 바뀌었다. 특히 정류소 이름판은 143명의 시민이 참여해 28.6대 1의 경쟁률 끝에 선정된 손글씨 작품들이어서 시민과 예술가 그리고 지자체가 함께 한다는 메시지도 엿보인다.
먼저 남산도서관 앞 정류장인 최순용 작가의 '회화적 몽타주'의 경우엔 정류장 자체를 하얀색 캔버스 개념으로 설치했다. 그리고는 버스를 타고 내리는 학생과 버스를 기다리는 아저씨와 아주머니 등 도서관을 오가는 사람들을 조형 요소로 설정했다. 시내버스 정류장이 서있는 곳의 의미를 그 겉모습에 녹여냈다.
후암약수터 입구에 설치된 주동진 작가의 '남산의 생태'는 서울에서 거의 사라졌다가 최근 그 근처에서 발견된 토종 개구리를 그려 넣었다. 보성여자중고등학교 근처 정류장에는 조각가 김재영이 옛 다이얼식 텔레비전을 형상화한 작품 '휴식'이 서있다.
하지만 디자인 요소만을 앞세운 나머지 정작 버스정류장 본연의 기능을 온전히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없는 건 아니다. 하얏트호텔 앞에 있는 김현근과 일본작가 스가타 고의 공동작품 '쉼표 + 또 다른 여정'이라는 이름의 정류장이 대표적이다. 김소월의 시 에서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이라는 시구에서 나타나는 고민과 갈등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정작 비나 눈은 막아주지 못하게끔 설계돼 있다.
물론 이런 시도는 서울시에, 나아가 한국의 거리 공공디자인에 있어 한발짝 나아간 변화임에는 틀림 없어 보인다. 하지만 디자인과 시민의 삶이 좀더 유기적으로 어울리는 디자인이 되게끔 좀더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서울시가 기능적으로 유용하면서 외양도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기 위해 '서울 우수 공공디자인 인증제'를 도입해 시행에 나섰다. 단순한 디자인의 변화에서 그치지 않고 그 거리를 걷는 이들이 진심으로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길로 탈바꿈하기를 기대해 본다.
/'다시,서울을 걷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