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과거사 치킨게임…해법 없는 '아버지 유산'
박정희 전 대통령 '한일수교'로 산업화 종잣돈 마련…박근혜 대통령 '아버지 산업화'가 최대 정치자산
한일수교, 일본 '청구권 소멸' 주장 근거로 악용돼…아베 총리 '국내정치용' 의도적 과거사 도발 계속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 70주년을 앞둔 1일 96주년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이 용기 있고 진솔하게 역사적 진실을 인정하고 한국과 손잡고 미래 50년의 동반자로서 새로운 역사를 함께 써 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꽉 막힌 한일관계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았지만 과거사 문제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결의를 담은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이 같은 호소가 일본에 먹힐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오는 4월이나 5월께 미국을 방문해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의회연설을 추진 중이라고 전해졌다. 한일 간 갈등 사이에서 방관 입장을 취하던 미국마저 최근 한국의 문제 제기에 피로감을 나타내고 있다. 일본의 재무장을 적극 지지해 온 국방부는 물론이고 신중한 입장을 지켜 온 국무부까지 기류 변화가 뚜렷하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정무차관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 세미나 기조 연설을 통해 "민족감정은 여전히 악용될 수 있고 정치 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며 "그러나 이 같은 도발은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을 뿐 일본의 과거사 도발을 국내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는 비판이다.
◆ 박 대통령, 아버지의 한일수교 유산에 발목 잡혀
셔먼 차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일본과의 대결에서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이다.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차원이 아니라 국내 정치에 발목이 잡혀 있다는 평가가 많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남긴 한일수교라는 유산의 공과를 모두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1965년 6월 22일 박 전 대통령은 거센 반대 속에 한일수교를 맺어 십여년을 끌어온 한일 과거사 협상을 매듭지었다. 경제개발에 필요한 돈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일본 돈을 종잣돈으로 삼아 산업화에 성공했고 산업화 지지세력은 딸인 박 대통령의 최대 지지세력이 됐다.
하지만 한일수교는 양날의 칼이 됐다. 박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일본과의 사이에서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지만 일본은 한일수교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한국의 모든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이미 친일 경력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대일외교에서 박 대통령이 물러설 경우 '부녀의 오점'이란 비판이 거셀 것은 불문가지다. 실제 전날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조차 "박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 이해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친일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면 움직이기 어렵게 될 우려도 있다"고 지적할 정도다. 올해 들어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급락해 레임덕 위기를 맞고 있다. 박 대통령이 물러설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관측이 더욱 힘을 얻는 이유다.
◆ 아베 총리, 국내정치용 '의도적 과거사' 도발…심화 전망
아베 총리가 물러설 가능성은 더욱 낮다는 관측이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는 "일본은 국내적인 필요에서 1990년대 후반부터 일관성 있게 보통국가화를 추구해 왔다"며 "아베 총리의 행보는 무엇보다 내부정치용"이라고 했다.
비슷한 관측이 다양한 대일 채널을 갖춘 정치권에서도 나오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해 10월 중국 방문 중 상하이에서 가진 기자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아베 정부가 (국가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올 들어 소비세를 5%에서 8%로 올리고 난 후 소비가 줄어 어려움을 겪는 등 경제적 문제가 심각하다"며 "이러한 재정건전성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한일 간 긴장관계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베 총리의 정치적 의도, 박 대통령의 좁은 입지 등은 동북아 정세와 맞물리면서 오히려 한일 갈등을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조 교수는 "우리가 포스트모던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 동북아는 아직 근대적인 가치체계 속에서 삶이 영위되고 있다"며 "한국과 중국은 아직 분단국가이고 일본은 보통국가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이들은 모두 하나의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이루는 근대국가를 향해 매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중일 3국은 근대적인 가치체계가 선거 등 국내정치에서 동원되기 쉬운 환경에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중국이 한미일 동맹을 약화시키기 위해 한일 갈등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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