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총 시즌을 맞아 재계와 금융권이 시끌법적하다. 올 주총에선 사외이사선임 문제가 핫이슈로 부각, 여론의 도마위에 오르면서 사회적 비난이 빗발치고 있기 때문이다.
사외이사제도는 1998년 외환위기 직후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로 오너나 경영진의 방만한 경영과 독단적 결정을 감시·견제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17년이 지난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경영 감시는커녕 '거수기'나 '방패막이' 등 정경유착을 고착화시키는 방향으로 변질되고 있다. 실제로 10대 그룹이 이번 주총에서 선임하는 사외이사 119명 가운데 47명이 장차관, 판검사, 국세청 등 권력기관 출신이다.심지어 고위 검사를 지낸 법조인들이 한창 수사나 재판을 받는 CJ,효성,포스코등 재벌그룹의 지주사와 계열사 사외이사로 대거 선임됐다. 대주주 등을 위해 사실상 로비스트 역할을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거수기 노릇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외이사의 이사회 안건 찬성률이 거의 100%에 가깝다는 사실이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다보니 기업이 경영위기를 맞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총수가 징역형을 받은 SK·CJ는 물론이고 사실상 그룹이 해체된 동양·STX에서도 제 목소리를 내는 사외이사는 찾아 볼 수 없었다.
황제대우를 받고 있다는 비아냥도 들린다.
하나은행 모 사외이사는 회의 한 번에 시급으로 773만원을 챙겼다고 한다. 서민은 한달 내내 일해도 만져보기 어려운 고액보수 아닌가. 상대적 박탈감이 클 수 밖에 없다. 뿐만 아니다. 금융권이 정치권과 연계된 이른바 '정피아' 인사들 위주로 사외이사를 선임하면서 비난 여론도 들끓고 있다.
급기야 후폭풍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관피아 척결을 외치던 정부가 '청피아', '정피아', '서금회(서강금융인회)'를 앞세워 신관치금융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이완구 총리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부패 사슬을 끊겠다고 담화했다"며 "낙하산 인사를 철폐해 그런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이런 개혁이 없이는 어떤 부정부패 척결도 불가능하다"라고 촉구했다.
오죽하면 무용론마저 제기되는 형국일까.
'거수기','방패막이'로 전락한 사외이사 제도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경영진의 전횡을 막고 기업 경영활동을 감시하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도록 자격 요건을 강화하고 방만 경영을 방조한 사외이사에게는 반드시 책임을 묻는등 제도적 장치마련이 시급하다.
IMF는 지난달 연례협의를 통해 한국경제의 하방세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해외 경제전망 기관들도 우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대까지 하향 조정하는등 어두운 전망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예사롭게 봐서는 안된다.
본래 취지와 달리 역주행하고 있는 사외이사제에 대해 IMF로부터 '더 이상 방치해선 안된다'는 경고장이라도 날아 와야 정신을 차릴런지 답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