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人 머니 산업 IT·과학 정치&정책 생활경제 사회 에듀&JOB 기획연재 오피니언 라이프 AI영상 플러스
글로벌 메트로신문
로그인
회원가입

    머니

  • 증권
  • 은행
  • 보험
  • 카드
  • 부동산
  • 경제일반

    산업

  • 재계
  • 자동차
  • 전기전자
  • 물류항공
  • 산업일반

    IT·과학

  • 인터넷
  • 게임
  • 방송통신
  • IT·과학일반

    사회

  • 지방행정
  • 국제
  • 사회일반

    플러스

  • 한줄뉴스
  • 포토
  • 영상
  • 운세/사주
오피니언>칼럼

[송병형의 다른 생각] 87년 수혜자가 피 흘린 박종철을 잊었다

송병형 정치부장직대





[송병형의 다른 생각] 87년 수혜자가 피 흘린 박종철을 잊었다

4·19혁명은 흔히 '미완의 혁명'이라 불린다. '혁명의 피'를 흘린 이들은 학생과 시민이었지만 수혜자는 이승만정권과 '오십보백보'인 구시대 정치인들이었다. 이들은 분출하는 민주화 요구를 감당하지 못했고 의지도 부족했다. 4·19를 '미완의 혁명'으로 전락시킨 빌미는 이들이 제공했다. 제2공화국의 혼란은 예고됐고, 결국 단명했다. 인적 청산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우리의 아픈 역사다.

우리사회는 87년 또 다른 전환점을 맞았다. 87년 6월민주항쟁이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 성과는 거의 30년을 이어간다. 6공화국은 역대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미완의 혁명'이 아닌 '87년 체제'라는 말도 나왔다. 이제는 '87년 체제'를 넘어 새로운 도약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거센 상황이다.

그런데 때 아닌 '역사의 반동(反動)' 조짐이 보인다. '87년 체제'로 향하는 흐름에 저항(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했던 이가 대법관을 맡겠다고 한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는 87년 1월 박종철 열사의 어이없는 죽음의 진실을 규명할 책임을 맡았던 검사 중 한 명이었다. 본인은 "말석검사로서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고 강변하지만 거듭된 재수사는 그 자체로 직무유기라는 증거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장을 맡아 수사를 책임졌던 최환 변호사의 말이다.

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거듭된 재수사에도 계속되는 은폐에 모두가 분노했다.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중앙일보 2단기사로 알려진 다음날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발표한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은 민주화 이후인 88년에야 은폐 혐의로 구속됐다. 박 후보자가 포함된 2차 수사팀의 결론은 "은폐 혐의가 전혀 없다"였다.

인사청문회를 계기로 박 후보자의 이 같은 과거행적이 대중에게 알려졌지만 양승태 대법원장은 요지부동이다. 지난 3월에는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임명동의안 처리를 독촉하는 편지까지 보냈다. 정 의장은 가결·부결과는 무관하다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고 임명동의안을 본회의에 상정했다. 다수당인 새누리당은 단독표결을 강행해 통과시켰다.

양 원장과 정 의장은 '87년 체제'의 수혜자다. 양 원장은 서울대 법대 66학번으로 1970년 졸업과 동시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엘리트법관의 길을 걸었다. 부산대 의대 67학번인 정 의장은 성공한 의사로 탄탄대로를 달리다 민주화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의해 정계에 입문했다. 그들이 성공가도를 달릴 때 후배인 80년대 학번들은 민주화를 위해 희생했다. 박종철 열사는 물론이고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피해자인 권인숙 교수나 87년 최류탄을 맞고 사망한 이한열 열사도 이들 중 한 명이다.

역사의 수혜자가 희생자들의 피를 잊을 때 역사는 퇴행한다. '미완의 혁명'인 4·19가 이를 입증한다. 김학규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박 후보자가 대법관으로 임명되면 박종철 열사만이 아니라 6월 민주항쟁에 참여한 국민들과 민주주의를 모독하는 것"이라고 했다. 4·19의 수혜자가 '미완의 혁명'에 책임이 있다면 양 원장과 정 의장은 어떤 책임을 져야 할까.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Copyright ⓒ 메트로신문 & 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