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형의 다른 생각] 이럴 바엔 차라리 모병제가 낫다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고통 받고 있다. 공부해야 할 시간에 알바로 푼돈을 버느라 매일 고되지만 그래봐야 졸업하자마자 빚쟁이 실업자 신세다. 힘겨운 학창시절을 보냈다는 기성세대들조차 청년들에게 감히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겠다고 고백할 정도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국회를 향해 청년들의 미래가 갈수록 암담하다며 청년일자리법안이라도 통과시켜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청년의 절반에게는 기성세대 대부분과 대통령이 잘 모르는 고통이 하나 더 있다. 절반의 청년들과 그들의 부모만이 아는 고통이다.
기계적 형평성에 치우친 엉터리 입영신청제도다. 공정한 경쟁이라는 미명 하에 병무청은 청년들에게 입영용 스펙을 강요한다. 원하는 보직에 적당한 스펙을 쌓을수록 경쟁에서 이겨 입대가 가능하다고 병무청은 강변한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스펙을 쌓아야 하는지 수십 번을 떨어진 청년들조차 제대로 모른다. 심지어 가리지 않고 모든 기회에 다 신청한 청년들이 모조리 떨어지기도 한다. 입영 스펙을 쌓으라는 병무청의 말의 진위조차 의심스럽다.
메트로신문은 청년들의 고통 해결을 위해 입영신청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수차례 보도해왔다. 그 과정에서 병무청의 문을 계속 두드렸다. 하지만 병무청은 '형평성에 입각한 공정한 경쟁에서 떨어졌다면 본인이 문제지 뭐가 문제될 게 있느냐'는 태도로 일관했다. 오히려 그런 문제를 제기하는 언론이 문제라고 훈수까지 뒀다.
과거 병역특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병무청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그때마다 각종 병무비리가 어김없이 드러났다. 병무청이 그토록 공정성과 형평성을 강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병역은 능력이 안 돼 떨어지면 어쩔 수 없는 대학입시가 아니다. 헌법이 강제하는 국민의 의무다. '더러워서 안가고 말지'라며 안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병무청의 태도는 모병제 국가인 미국에나 어울린다.
특히 병무청은 겉으로는 공정성과 형평성을 강조하면서도 뒤로는 들끓는 민원을 가라앉히기 위해 수십 번 떨어진 청년에게 군대의 빈자리를 알선했다는 게 최근 본지 취재 결과 드러났다. 원칙도 없었다. 그저 문제가 불거져서 알게 되면 대응하는 수준이었다. 병무청 담당자는 지방병무청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발뺌을 했다. 공식입장이라고 나중에 한 말은 또 달랐다. 단지 정보를 제공했을 뿐이라고 무마에 나섰다. 병무청의 공식입장은 항상 이런 식이다. 숨기기에 급급하다. 그토록 강조하던 원칙은 오직 공식입장에만 존재한다. 이럴 바엔 차라리 모병제가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