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인문학] 리더십 : 채찍을 쓰지 않고 말이 빨리 달리게 하려면 (2)
대한민국에서 가장 이야기가 많은 감독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김성근 감독을 꼽을 것이다. 그는 이방인이었다. 아무런 연고 없이, 누구의 도움도 없이 대한민국 최고의 야구 감독이 되기까지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했다. 그 배경에는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올곧은 의지와 자신만의 철학이 있었다. 때로는 고지식하고 보수적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하지만 적어도 그는 자신이 맡은 팀을 기어코 강팀으로 만들어낸다.
한화는 지난해까지 프로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의 약팀이었다. 거액을 투자해 FA(자유계약) 선수인 정근우와 이용규와 계약하고, 김응용 감독을 영입했지만 오히려 2013시즌에는 신생팀 NC 다이노스에도 밀려 꼴찌로 추락했다. 그러는 사이 선수들은 패배주의에 빠졌고 그와 더불어 보기에도 민망한 에러들이 속출하며 손가락질 당해야 했다. 이 기간동안 한화를 응원하는 팬들을 다른 팀 팬들이 불쌍하게 여길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 시즌은 다르다. 한화는 '마리한화'라는 별명만큼이나 중독성 있는 야구를 선보이는 팀으로 변했다. 그에 따라 성적도 좋아졌다. 팬들의 사랑도 더욱 커졌다. 지난 4월 한 달 12차례의 홈경기에서 매진을 3회나 기록했다. 원정경기 평균 관중은 1만3823명으로 10개 구단 중 2위다. 한화 유니폼 매출액은 지난해에 비해 250% 늘었다. 매출액 1위는 김태균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이고 2위는 바로 김성근 감독이다. 이 모든 게 지난해 10월 말부터 김성근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생긴 변화다.
벌써 칠순을 넘긴 나이지만 김성근 감독은 직접 펑고에 나설 정도로 가장 앞에서 선수들을 이끈다. 선수들과 같은 곳에 서서 같은 눈높이로 그들을 지도한다. 진정한 리더란 평등한 자세에서 출발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한시도 긴장을 놓지 않는다. 선수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2군으로 보내 반성의 시간을 보내게 한다. 반면, 당장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더라도 성실한 자세를 보이면 어떻게 해서든 부활시킨다. 최동수를 비롯해 많은 선수들이 김성근 감독의 지도에 따라 대기만성의 활약을 선보인 바 있다. 신치용 감독과 마찬가지로 실력보다 인성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김성근 감독은 재일동포 출신으로 1942년 12월 3일 교토에서 태어났다. 일본 이름은 '가네바야시 세이콘'이다. 한국 땅을 처음 밟은 것은 1959년 재일동포 학생야구단으로 한국을 방문하면서부터다. 이후 1960년에 교통부에서 실업팀 선수로 활동했다. 한국에서 최초로 싱커를 던진 투수 답게 9경기 연속 완투라는 세계 신기록도 가지고 있다. 물론 지금처럼 스포츠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기에 혹사를 당해 5년 만에 투수를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어깨가 망가진 것보다 김성근 감독을 괴롭혔던 것은 '반쪽바리'라는 차별이었다. 그에 의하면 청소년 대표팀 시절부터 들었던 말이라고 한다. 재일교포 출신에 한국말도 어눌한 김성근 감독이 당시에 받았을 차별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때문에 그는 2000년대 이전까지 야구계에서 아웃사이더로 취급 받았다.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야구팬들의 사랑을 받고 또 그에 걸맞은 성적을 거두는 김성근 감독의 리더십은 어떤 비밀이 있는 것일까.
▲ 학이(學而)편 過則勿憚改 (과즉물탄개)
잘못이 있으면 그 잘못을 고치는 데 망설여서는 안 된다.
김성근 감독은 맡는 팀마다 상위권 팀으로 도약시키는 '턴어라운드(실적개선)' 전문가로 유명하다. 그는 팀을 맡는 순간 선수들을 일일이 관찰하고 지도한다. 선수 개개인의 훈련도 직접 하곤 한다. 1군 핵심 선수라고 해도 김성근 감독의 훈련을 피해갈 수 없다.
김성근 감독이 팀을 이끌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노력이다. 스타급 고참 선수나 재능을 과신하는 천재형 선수들도 본인이 보기에 게을리한다 싶으면 가차없이 라인업에서 빼버리는 등 엄하게 다루기로 유명하다. 한화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한화 선수들은 기본기부터 철저하게 다시 훈련 받았다. 정근우 선수는 유니폼이 흙으로 범벅이 돼 너덜해질 정도로 혹독한 수비 훈련을 했다.
정말로 그들이 기본기가 부족해서 이런 혹독한 훈련을 시킨 것일까? 아니다. 김성근 감독은 우선적으로 그들의 패배의식을 없애고 싶었다. 진부한 방식이지만 김성근 감독은 뚝심 있게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켰다. 훈련을 통해 패배의식을 걷어내고 정신을 중무장시켰다. 김성근 감독의 노림수는 제대로 통했다. 선수들은 본연의 실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집중력이 늘었다. 지난 4월까지 13승 중 역전승만 6차례였다는 것이 그 증명이다. 또한 매진 사례를 기록한 10회에서 7회나 승리를 거뒀다. 팬들의 성원에 보답한 셈이다.
▲ 학이(學而)편 不失基親 (부실기친)
가까운 사람을 잃지 말아라.
김성근 감독은 세간에 알려진 무서운 이미지와 다르게 제자들을 아끼기로 소문난 지도자이다. 김성근 감독이 지도했던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의 팀 해체를 다룬 다큐멘터리 '파울볼'에서도 끝까지 선수들이 야구를 계속 할 수 있도록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종종 고된 훈련으로 혹사 논란이 일곤 하지만 김성근 감독 본인도 혹사로 망가져 선수 생활을 멈춘 바 있기에 오히려 선수 보호를 무엇보다 우선으로 둔다. 자신의 자서전에서 밝혔듯이 김성근 감독은 '이기고 싶지만 선수를 망가트리면서까지 이기고 싶지 않다'는 말을 썼다. 2009년 한국시리즈 당시 김성근 감독은 KIA 타이거즈에 강한 김광현을 선발 라인업에 올리라는 주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올리지 않았다. 당시 김광현은 2009년 8월 2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김현수의 타구를 맞아 골절상을 입었기에 시즌 아웃상태였다. 때문에 김성근감독은 우승보다도 선수 보호를 택했던 것이다.
이런 일화도 있다. 김성근 감독의 발음이 어눌한 것은 충암고 감독 시절 제자의 타격을 봐 주다가 배트에 맞아서 앞니가 몽땅 부러졌기 때문인데 그는 제자가 부담을 가질까봐 재치를 발휘하여 '내가 집중을 안해서 이렇게 부상당했으니 너희도 조심해라'라고 말하며 오히려 부상을 조심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4월 22일 잠실구장에서 치른 LG와의 경기에서 김성근 감독은 구원투수로 등판한 권혁을 위해 마운드에 방문해 권혁의 볼을 쓰다듬으며 "흥분하지 말고 천천히 던져라. 두 점 줘도 괜찮다"고 권혁을 격려했다. 권혁은 김성근 감독이 부담을 덜어주자 제 실력을 발휘해 세이브를 기록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