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가 전국으로 퍼졌다. 지난 5월 사람들은 뉴스에 등장한 메르스에 시큰둥했다. 고열, 낙타, 중동 등의 단어가 생소했고, 또 다른 감기 정도로 받아들였다. 감염자, 확산, 격리 등의 소식을 접하면서 뭔가 있구나 싶었다. 곧메르스 관련 병원 공개 불가 뉴스에 심상치 않은 현상이란 걸 확신했다. 그 후 두 주 만에 메르스는 대한민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이 사태를 두고 사람들은 말했다. 내 진작에 이럴 줄 알았지.
핸드폰은 신용거래가 기본이다. 요금약정, 할부지원 등 모든 프로그램이 소비자의 신용을 담보로 제공된다. 이는 소비자가 구매한 핸드폰이 할부금융사의 프로그램에 가입돼 있기 때문이다. 물론 소비자는 이러한 사실을 모른다. 아니, 알 필요도 없다. 약정기간 동안 요금제를 충실히 지키면 ‘공짜나 다름없는’ 핸드폰 사용이 가능하다는 설명의 힘이다. 약정기간 내에 핸드폰 사용을 중단해도 할부금융사와의 거래 내용은 드러나지 않는다.
콜센터는 무식하다. 어디라 할 것도 없이 그렇다. 고객의 질문에 대한 답은 상담원이 교육 받은메뉴얼 안에서 유효하다. 즉, 고객의 질문이 상담원 교육 시 포함됐던 예상질의에 없는 것이라면 답변은 허무맹랑하다. 상담원이 알고 있는 가장 가까운 혹은 유사하다고 판단되는 질의로 간주해 같은 대답을 반복한다. 최대한 친절하게. 질문의 요지를 못 알아 듣는 게 아니라 알아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상담원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회사의 상품이나 서비스에 무지하다. 콜센터가 제3자의 손에 의해 쉽게 운영되는 탓이다.
메르스의 확산은 초기 발생 시 병원과 일부 사람의 인권을 이유로 국민들의 기본권인 알권리를 무시한 대가다. 사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더라면 스마트한 소비자들은 정부와 의료기관의 도움 없이도 조기에 이 문제에서 벗어났을지도 모른다.
핸드폰 사용 신청 시 소비자의 신용정보가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설명해줘 한다. 소비자는 당연히 통신사에 제공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동의서란 걸 꼼꼼하게 읽어보는 소비자는 없다. 아니, 그걸 읽어보게 놔두는 서비스 제공자는 없다.
콜센터는 소비자에 대해 기업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다.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소비자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줘야 하기 때문이다. 형식적 운영 혹은 전시용 운영으로 둘 바에야 폐쇄하는 게 낫다. 앵무새 놀이를 제공할 게 아니라면 말이다.
알권리는 사람이 스스로 선하고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는 본성에서 기인됐다. 대체 왜 우리는 타인의 알 권리를 존중하고 인정하지 않는가. 아니다. 짓 밟지만 않아도 다행인 권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