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친위쿠데타에 새누리당 쪼개지나
총선 겨냥한 내전 방아쇠 당겨졌다
[메트로신문 송병형기자]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을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이 그리기 시작한 정치지형도의 윤곽이 뚜렷해지고 있다. 전체적인 윤곽은 내년 총선을 통해 비박(비박근혜) 지도부가 장악한 여당을 물갈이 하는 형태로 귀결된다.
박 대통령은 말 없이 자신의 구상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는 모양새다. 물론 총대는 친박(친박근혜)계가 멨다.
비박계는 박 대통령의 기습에 뒤늦게 집단행동에 나선 상황이다. 우선 찍어내기 위기에 몰린 유승민 원내대표 사수에 여념이 없다. 당내 수적인 우세가 이들의 강점이지만 '선거의 여왕'인 현직 대통령에 맞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악의 경우 새누리당이 쪼개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29일 거부권 정국은 이미 유 원내대표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 상황이다. 외부에서는 의원들이 선출한 원내대표를 대통령이 공공연히 찍어내려는 모습에 새누리당을 정당이라고 볼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비박계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용태 의원은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를 의원들의 총의가 아니라 청와대나 당 지도부가 결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성태 의원은 "청와대와의 관계를 고려해 물러나라고 여당 원내대표를 흔드는 것은 수평적이고 건강한 당청 관계를 부정하려는 시도로 보일 수 있다"며 "유 원내대표를 그냥 일방적으로 끌어내리는 모습은 국민에게도 우리 당이 할 도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의원 성향에 따라서 더욱 강경한 비판을 쏟아내기도 한다. 정두언 의원은 이날 "여당 의원이 뽑은 원내대표를 청와대가 사퇴하라는 것은 과거 군사독재 정부 시절 때의 얘기 같다"며 "우리 손으로 뽑은 우리 원내대표를 쫓아내는 것은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비박계는 말로만 그친 게 아니다. 김용태, 김성태 의원을 포함해 비박계 재선의원 20명은 이날 유 원내대표를 사수하기 위한 조직적인 행동에 나섰다. 이들은 유 원내대표의 거취를 논의하기 위한 최고위원회 긴급회의에 앞서 친박계 최고위원들을 겨냥해 "(지난 25일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직후 열려 유 원내대표를 재신임한) 의원총회 결과를 무색하게 하면서 원내대표 사퇴를 주장해 당내 분란이 확산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그러면서 " 민주적 절차를 통해 결정된 것을 의원들의 총의를 묻지 않은 채 최고위원회가 일방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김무성 대표는 이보다 앞서 최고위 회의는 단지 논의를 위한 것일 뿐, 최종결정은 의총에서 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성명은 친박과 청와대의 압력을 받고 있는 김 대표에게 힘을 실어준다는 의미도 있었다.
재선 의원들이 선봉에 나섰고 이에 동조하는 초선 의원들까지 합세하면 비박계의 수적 우세는 압도적이다. 지난 25일 의총에서도 40여명의 발언자 중 청와대에 동조한 의원은 극소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친박계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당초 구상을 실행에 옮기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5일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회법 개정안 문제)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정치권이 국민을 위해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 원내대표를 비판했고, '배신의 정치'를 언급했다. 이어 "구태정치는 이제 끝을 내야 한다"며 "이제 우리 정치는 국민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만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이 원하는 목표는 이어지는 말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박 대통령은 "그런 정치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국민들 뿐이고, 국민들께서 선거에서 잘 선택해 주셔야 새로운 정치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게 될 것"이라며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이라고 했다. 내년 4월 13일 치러지는 총선은 불과 10개월도 남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을 기회로 총선을 겨냥한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박 대통령은 25일 자신의 청사진을 내비친 뒤 당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해야할 말을 다 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남은 일은 머릿속 구상을 실행에 옮기는 일이다. 박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와의 대화의 창구를 완전히 닫은 일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대화 통로가 차단된 유 원내대표는 26일 박 대통령에게 올리는 반성문을 공개석상에서 읊어야 했다.
박 대통령의 나머지 실행계획이 어떤 내용인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비박계가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수적 우위라는 강점을 잃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친박계의 친위쿠데타를 봉쇄하지 못한다면 총선을 앞두고 당이 쪼개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