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추진중인 삼성그룹에 하루사이에 희비가 교차되고 있다. 엘리엇이 낸 2건의 가처분 소송에 대한 법원 판결에서 2연승을 거뒀다 싶더니 합병반대를 권고하는 전문가집단의 의견이 잇따라 제시됐다. 합병이 실패할 것이라는 증권사의 냉정한 보고서도 나왔다.
삼성이 가처분 판결에서 승리한 것은 사실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다. 지금까지 삼성이 하는 일에 대한민국 법원이 제동을 걸어본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엘리엇 측에서도 이번 가처분 소송에 대해 그저 삼성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기 위한 수순 쯤으로 여긴 것 같다. 결국 이번 합병 사안은 오는 17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결판나게 됐다. 이에 따라 11.21%의 지분을 갖고 있는 국민연금의 향배에 시선이 집중된다.
국민연금의 입장정리를 앞두고 국내 의결권 자문기관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국민연금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라고 권고했다. 속단할 수는 없지만 만약 국민연금이 이 권고대로 한다면 합병은 실현되기 어렵다. 국민연금이 권고안을 무시하고 찬성한다고 해도 주주총회에서 가결되리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갈수록 태산이다. 설령 합병이 어렵사리 성사된다고 해도 상처뿐인 승리가 되기 쉽다. 특히 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자를 적으로 돌려 버렸으니, 향후 삼성그룹 전체와 이재용 부회장에게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삼성은 이제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살펴봐야 한다. 합병 추진으로 인한 부작용이 그토록 크다면 무모하게 고집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고려 말기에 우왕과 최영 장군이 요동반도를 공략하려고 할 때 이성계 장군이 회군했듯이 삼성도 그런 용단을 내려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이는 아마도 이재용 부회장의 결단이나 "삼성의 이성계"를 필요로 할 것이다. 현명한 지도자는 무모한 승리를 도모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추진하다가도 문제가 드러날 때 즉각 인정하고 방향을 선회한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도 어리석은 일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