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근소한 차이로 성사됐다. 성사된 배경을 따져보면 소액주주들이 '애국심 마케팅' 효과 때문에 이분법적인 논리로 선택의 여지가 없어 찬성은 하지만 합병비율은 불합리하다는 내용이 상당수였다. 합병 직후 마치 준비라도 한 듯 대다수 언론들이 삼성물산의 압승이라고 표현했다. 분명 잘못된 표현이었다. 실상은 근소한 차이로 겨우 통과된 것이다.
합병안이 주총을 통과하려면 참석주주의 66.67%의 찬성해야 했는데, 이날 69.53%를 얻었으니 2.86%p 많은 것에 불과했다. 가까스로 이겼다는 표현이 올바를 것이다. 주총 당일도 엘리엇매니지먼트 의결권 대리인이 문제를 제기했던 이건희 회장의 삼성물산 보유 지분(1.4%)에 대한 포괄적 위임문제는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 기관투자자 중에서 3% 정도의 지분이 있는 한 곳만 찬성에서 반대로 돌아섰다면 부결됐을 것이다. 이 회장의 지분을 제외하면 더더욱 가까스로 찬성비율을 넘긴 것이다.
이날 엘리엇 대리인인 장대근 루츠알레 변호사는 주총장에서 "이건희 회장이 건강상 문제로 주총장에 참석하지 못했는데 지분행사 권한을 위임하고 몇 월 며칠 어떤 방법으로 위임장을 제출했는지 답변해 달라"고 물었다. 장 변호사는 "법적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느냐"면서 "이 회장이 의사를 정확히 확인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발언은 법적 소송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건강상의 문제로 의결권 의사를 확인하지 못한 데다 주총에 참석하지 못한 이 회장의 위임장 제출 여부와 시기가 과연 적법하냐는 것이다.
엘리엇측은 주총이 끝나자마자 "수많은 독립 주주들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합병안이 승인된 것으로 보여 실망스럽다"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엘리엇이 미국과 유럽 등에서 순자산을 기준으로 합병 비율을 계산하는 것을 예를 들어 문제 삼으며 투자자·국가소송(ISD)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ISD는 외국인 투자자가 현지의 불합리한 법·정책 때문에 피해를 입었을 경우 국제 중재를 신청해 손해배상을 받는 제도다.
합병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국민연금은 국부펀드이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엘리엇이 ISD를 제기할 수도 있다. 엘리엇은 이미 아르헨티나 정부와 페루 정부를 상대로 ISD를 제기해 승소한 사례가 있다.
아울러 형성된 순환출자 구조를 이용해 엘리엇이 삼성과의 장기 분쟁을 준비할 가능성도 상존하고 있다. 지난 5일 엘리엇은 삼성SDI와 삼성화재의 지분을 1%씩 매입다. 삼성SDI와 삼성화재는 모두 삼성물산 대주주로서 각각 지분 7.18%와 4.65%를 보유하고 있다. 지분을 1% 이상 보유하면 대주주로 분류되기 때문에 회사에 이사 해임 등을 건의할 수도 있다. ISD가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는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에 투자하는 시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