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김보배기자] 삼성물산에 '백기사'를 자처한 KCC가 막대한 손실을 떠안으며 진퇴양난에 빠졌다. KCC는 6000억원이 넘는 자금을 들여 삼성물산 주식을 매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거들었다. 하지만 이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KCC 주가가 동반 하락하며 1조원에 달하는 평가손실을 입게 됐다. 급기야 정몽진 KCC 회장은 자녀들까지 동원해 자사주를 매입해 주가 방어에 나섰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17일 유가증권시장에서 KCC는 전날과 같은 39만8000원에 보합 마감했다. KCC 주가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주주총회 전날인 지난달 16일 55만2000원에서 현재까지 27.89% 하락했다. 같은 기간 시가총액은 5조8070억원에서 4조1870억원으로 1조6200억원이 증발했다.
이날 삼성물산은 전 거래일 대비 0.5%(250원) 내린 4만9750원, 제일모직은 0.34%(500원) 떨어진 14만5000원을 기록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가는 지난달 17일 합병 이슈로 고점을 찍은 이후 현재까지 각각 30.71%, 28.32% 역주행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株 평가손실 1조원
KCC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돕고자 지난 6월10일 종가 7만5000원에 삼성물산 자사주 5.76%를 사들였다. 지난해 영업이익 보다도 두 배가 많은 6743억원을 투입했다가 2270억원의 평가손실을 입었으니 3분의1 넘게 허공에 날렸다.
특히 KCC가 보유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전체 지분가치를 따지면 손실 규모는 더 커진다. 지난 6월 기준 KCC가 가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지분은 각각 931만주(5.96%), 1375만주(10.19%)다. 이에 따라 KCC는 삼성물산 주총 이후 현재까지 한 달 만에 삼성물산에서 1820억원, 제일모직에서 6668억원 등 총 8488억원의 평가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투자자들은 KCC가 무리하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극'에 출연했다가 투자 실패뿐만 아니라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KCC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856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14.8% 감소했다. 매출액과 당기순이익은 8579억원, 561억원으로 각각 3.8%, 19.7% 줄어들었다. 페인트 등 도료업이 본업인 KCC는 전방산업인 조선과 자동차 업황 부진으로 하반기 실적 전망도 어둡다.
◆자사주 매입 효과…'반짝' 상승 그쳐
정몽진 KCC 회장은 최근 삼성물산 투자 실패와 실적 부진에 따른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해 자녀들까지 동원해 자사주 매입에 나섰다.
KCC는 정 회장이 지난 12일 보통주 4983주를 장내 매수해 보유 지분율이 17.76%에서 17.81%로 늘었다고 공시했다. 정 회장의 딸 재림씨와 아들 명선씨도 각각 2740주, 4900주를 장내 매수했다. 이들의 주식 취득가는 49억원에 달한다.
정 회장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폭락한 주가를 방어하기 위해 자사주를 매입한 이후 7년 동안 지분을 늘리지 않다가 '투자실패'에 대한 비난여론을 의식한 듯 다시 나서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CC 주가는 자사주 매입 다음날인 13일 2.45% 오르는 데 그쳤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투자의 귀재라 불리는 정 회장이 자사주를 매입할 정도로 KCC 주가는 위기"라며 "업황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에 무리하게 투자한 후폭풍을 만회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