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만에 자유 찾았지만 누명은 여전
이한탁씨 마침내 자유의 몸
1989년 화재로 큰딸 잃어
부실한 재판에 딸 살해 누명
친딸을 방화살해했다는 혐의로 억울한 옥살이를 25년이나 한 이한탁(80)씨가 마침내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되었다. /뉴시스
[메트로신문 송병형기자] 미국에서 26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해 온 이한탁(80)씨가 19일(현지시간) 완전한 자유를 찾았지만 친딸을 방화·살해했다는 누명은 아직 벗지 못했다.
뉴시스에 따르면 이날 필라델피아 연방 제3순회 항소법원은 이씨의 유죄 평결을 무효화한 연방 지방법원의 판결에 이의를 제기한 검찰의 항소에 대해 '이유 없다'고 기각결정을 내렸다. 구명위원회 크리스 장 대변인은 "이씨는 오늘부로 완전히 자유로운 몸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철도고와 연세대를 졸업하고 교사생활을 하다가 1978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뉴욕에 이민을 왔다. 하지만 큰딸이 우울증을 앓으면서 이를 치료하기 위해 찾은 교회 기도원에서 비극을 맞았다.
1989년 교회 기도원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딸을 잃은 이씨는 딸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 채 억울한 옥살이를 시작했다. 재판 초기 변호사의 무성의와 검찰의 터무니 없는 주장, 배심원의 이해할 수 없는 평결로 이씨는 감형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무죄를 입증하기 위한 엄청난 분량의 과학적 자료가 증거로 제시됐지만 별무소용이었다. 이씨는 이후 교포사회의 도움을 받아 지난 26년동안 옥살이를 하며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한 치열한 법정 싸움을 계속해 왔다.
이씨의 억울한 사연은 수차례 국내외 언론에 소개됐고, 한국 방송에서도 다루어졌다.
지리한 법정 싸움을 계속해 온 이씨는 마침내 지난해 5월 증거 불충분으로 보석 석방됐다. 하지만 그해 12월 검찰이 마감 기일에 항소를 제기해 또 다시 지리한 법정공방을 벌여 왔다.
지난 6월 18일 열린 필라델피아 연방 제3순회 항소심에서 검찰은 이씨에 대해 "적법한 절차에 의해 기소됐으며 대배심의 판결에 따라 유죄가 확정됐다. 유죄 평결을 무효화한 연방 지방법원의 판결은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씨 측 피터 골드버그 변호사는 이에 대해 "이씨는 완전히 잘못된 증거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검찰이 항소를 늦게 접수하는 등 제기할 근거가 전혀 없으므로 항소 자체가 무효"라고 맞섰다.
재판은 이씨의 승리로 끝났지만 억울한 누명까지 벗은 것은 아니다.
크리스 장 대변인은 "이번 재판은 석방 판결에 대한 적법성만을 다룬 것으로 이씨가 방화 살해라는 혐의에서 무죄가 된 것은 아니다. 공식적인 무죄 판결을 위해서는 별도의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명위원회는 이씨가 억울한 누명을 완전히 벗고 잃어버린 세월을 보상받기 위한 소송 여부에 대한 입장을 변호사와 상의한 후 곧 발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