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rs under lilies/Marc Chagall/1925/101.6 x 76.2 cm/개인소장(출처:위키아트)
이 그림은 마르크 샤갈(Marc Chagall/1887-1985)과 그가 사랑하는 부인 벨라의 모습이다. 러시아에서 태어난 그가 파리에서 생활하던 한동안 그는 물질적인 궁핍에서 벗어나 풍요롭게 지냈다. 1925년을 기점으로 한 그의 그림에는 행복한 자신과 부인 벨라가 자주 사랑스럽게 등장한다. 벨라는 상류 부르주아 계급 출신인데도 불구하고 부모님이 원하는 정혼자가 아닌 젊고 패기 있지만 가난했던 화가 샤갈에게 자신의 인생을 건다. 그녀는 샤갈의 그림에서 보들레르의 시 세계를 발견할 정도로 해박했고, 샤갈에게 오랜 시간 좋은 영감을 주었으며 힘들 때 늘 힘이 되어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했을 시기에 샤가와 벨라는 프랑스에서 추방당해 미국으로 간다. 그리고 1944년 가을, 망명생활을 하던 도중 벨라는 치료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다. 샤갈은 그녀가 죽은 후 그는 9개월 동안 절망에 빠져 그림을 그리지 못했고 모든 그림들을 벽을 향해 돌려놓았다고 한다.
벨라가 죽은 지 이듬해, 그는 사랑했던 벨라에 대한 마음을 담아 또 다른 작품을 남긴다. 이 '화촉'이라는 그림 속에서 샤갈은 다시 한 번 벨라에게 청혼을 했을 것이다. 그들의 마지막 결혼식을 상상의 동물들과, 피리 부는 천사, 음악가들이 함께해준다.
The Wedding Candles/1945/캔버스에 유채/122x120cm/개인소장(출처:위키아트)
내 기준에 샤갈과 벨라의 사랑은 성숙하다. 그들은 머뭇거리지 않았으며, 서로를 믿었고, 계산하지 않았다. 벨라는 샤갈의 숨겨진 재능을 믿고 늘 그와 함께해 주었으며, 샤갈 역시 벨라에게 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한 사람의 죽음이 코앞에 올 때까지 도망치지 않았고, 힘든 망명생활을 함께 견디면서도 늘 행복을 찾았다. 끝까지 성숙하려고 노력하는 사랑이 우리를 결혼이라는 문에 입장하게 만든다. 연애의 결말은 청혼이 아니라, 성숙한 사랑의 또 다른 시작이 결혼이라는 것을 나는 샤갈의 그림들을 보며 느꼈다.
"평생토록 그녀는 나의 그림이었습니다."
벨라의 무덤에 샤갈이 적은 비문이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가 묵직하게 자리 잡는 삶. 누군가는 그런 삶이 소모적이라 하더라도 내게 그런 삶은 가장 풍요로운 삶이다. 사랑으로 충만해지고 사랑으로 궁핍해지는 순간이 올지라도 우리가 어김없이 사랑을 찾아 헤매는 이유는 그 지독한 사랑이 주는 감정의 파노라마가 다른 그 어떤 행위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고 나누는 것만큼 어럽고 매력적인 과정이 또 있을까.
남편을 만나 결혼할 때 즈음 법륜스님의 라는 책이 유행했었다. 그 책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다.
"아내는 남편에게 덕 보고자 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덕 보겠다는 마음이 살다 보면 다툼의 원인이 됩니다. 아내는 30퍼센트 주고 남편에게 70퍼센트 덕을 보려 들고, 남편도 한 30퍼센트 주고 아내에게 70퍼센트 덕을 보려고 합니다. ……베풀어 주겠다는 마음으로 결혼하면 길가는 사람 아무나하고 결혼해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법륜 스님은 그 책에서 늘 손해 보는 마음으로 살아야한다고 이야기했다. 상대방의 부족한 부분을 껴안고 감싸는 마음으로 살면 그 누구도 결혼생활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하면서.
촌스럽지만 나는 그 책이 진리인양 마음속으로 '앞으로 결혼하면 꼭 이렇게 살아야겠다'라며 몇 번을 다짐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니 그 책을 읽으며 다짐했던 것을 새까맣게 잊고 지냈다. 덕 보려는 마음만 가지지 말고, 덕 보게 해주는 마음을 늘 생각하자는 나의 다짐은 늘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남편을 탐구하는 일은 평생해도 못할 이루지 못할 숙원사업 같다. 어쩌면 그래서 결혼이라는 제도가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수많은 인구 중 단 한사람이라도 진득하게 진심으로 탐구하라고 말이다.
'사랑이란 자기희생이며, 이것은 우연에 의존하지 않는 유일한 행복이다' 톨스토이의 말이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우연만 존재하지 않다. 부부관계는 무수히 많은 희생과 이해의 패스가 오고가야 신뢰가 쌓이고 행복한 가정생활로 이어진다. 샤갈의 그림은 내게 평생을 탐구해도 부족할 남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성숙한 사랑이 내뿜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덕 보려는 마음이 자꾸 불쑥 불쑥 등장하는 내게 넌지시 경고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만큼은 손해 보는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이소영(소통하는 그림연구소-빅피쉬 대표/bbigsso@naver.com/출근길 명화 한 점, 엄마로 다시 태어나는 시간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