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전쟁, 일본은 이미 겪었다
일본의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홈페이지
[메트로신문 송병형기자] 12일 교육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발표를 계기로 진영논리를 바탕으로 한 역사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전쟁의 결말은 한국사회의 방향을 결정지을 전망이다. 이미 일본에서 일어난 일이다.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여러 차례 교과서 파동을 경험했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특히 1997년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 발족 이후 역사교과서를 두고 학계, 정치권, 언론이 한데 어울려 한바탕 전쟁을 치러왔다. 현재까지의 결과는 일본 사회의 우경화다. 한국에서의 결말도 마찬가지일까. 단언하기는 힘들다. 일본이 20년에 걸쳐 단계적인 고지 점령전 방식이었다면 한국은 한순간에 국정화로 승부를 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단기전은 쉽게 전세가 뒤집힐 수 있다.
일본의 우경화는 역사교과서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평가가 많다. 일본의 교과서는 검정제도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2000년 첫 우익 중학교 역사교과서가 출현했고, 이 교과서가 2001년 검정을 통과했을 때 채택률은 간신히 0.1%를 찍을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었다. 2005년 8종의 역사교과서, 공민·지리교과서 등 우익교과서의 검정 통과가 늘어나고서야 그나마 전선이 모양새를 갖춰갔다. 일본 사회의 우경화도 이때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전황은 2006년 아베 신조 정권이 교육기본법을 개정하면서 변화가 왔다. 아베 정권은 교육기본법에 '나라와 향토를 사랑한다'는 애국심 강화 조항을 삽입했다. 문부과학성은 이를 근거로 2008년, 2009년 초·중·고교 학습지도 요령과 해설서를 만들었다. 요령과 해설서는 교사들의 수업에서 지침 역할을 한다. 해설서가 좀 더 상세한 내용을 담는다. 교과서 검정규칙에는 '교과서는 학습지도요령 해설서를 따르지 않으면 안된다'는 규정이 있어, 민간 출판사들은 이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검정제도를 유지하면서 사실상 국정화 효과를 내는 방식이다. 이후 2014년 1월 문부과학성은 중·고교 교과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논란이 되고 있는 독도와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등을 일본의 고유 영토로 명기한다. 2015년 검정을 통과한 일본 교과서들은 모두 이 해설서의 내용을 따랐다.
2014년의 해설서가 나오기 직전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아베 정권이 일본 국민들을 교육하고 있다"며 "그들은 '우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가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인들이 알링턴 국립묘지에 가는 것과 같다'고 일본 국민들에게 교육한다. 또 '독도는 당연히 일본 땅'이라고 가르친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우익세력이 역사교과서를 주요 정치수단으로 삼았다는 이야기였다.
아베 총리는 그 중심에 있다. 그는 1993년 정계에 입문했다. 일본 경제가 붕괴되고 한국과 중국의 경제가 부상하면서 일본 사회가 우경화하기 시작하던 때다. 호사카 교수는 "아베 총리와 그의 추종자들의 움직임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호소카와 모리히로 정권이 출범해 자민당이 야당이 됐다. 그때 나온 것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군의 관여를 인정한 1993년 고노 담화다. 자민당이 재집권한 뒤 처음 들어선 무라야마 도미이치 정권에서는 무라야마 담화가 나왔다. 이 상황에서 새역모라는 것이 자민당 우파의 지원으로 출범했다. 2006년 1차 아베 정권이 들어서자 교육기본법을 고쳤고, 이때 집단자위권·헌법개정·위안부 부정·고노담화 수정 등 지금 말하는 모든 것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아베 총리는 정계 진출과 동시에 '역사검토위원회'를 창립했다. '역사검토위원회'는 4년뒤 새역모로 진화한다. 새역모는 우익 정치인들과 우익 학자들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새역모는 극우 성향의 강사들을 세미나에 초청하고 이들을 적극 지원했다. 우익 교과서의 탄생과 확산은 모두 이들의 작품이다. 역사교과서의 장악이 일본 우경화의 근간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