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송병형기자] 지난 12일 교육부가 국정교과서 방침을 발표한 뒤로 온 나라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미 2013년 교학사 역사교과서 문제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으니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우리나라 역사교육의 문제가 무엇인지 국민들 모두가 함께 고민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데마고기'나 '프로파간다'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국민들이 똑똑해질수록 좋은 법이다. 진영논리가 횡행하는 우리 사회라면 더욱 그렇다. 문제는 국정교과서가 졸속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정확히는 엉뚱하게 국정화 불똥이 튄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졸속 우려다.
중학교 역사교과서는 한국사와 세계사를 동시에 다룬다. 애초 교과서 논란은 고등학교 한국사, 특히 근현대사 부분에서 촉발됐다. 중학교 역사교과서까지 국정화가 되는 이유를 따져보자면 한국사가 들어간다는 것뿐이다. 중학교 역사교과서 내용 일부를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맞춰 쓰려다보니 세계사까지 통째로 다시 쓰게 된 꼴이다. 혹자는 '세계사야 논쟁거리가 아니니 기존 내용대로 그대로 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의 중학교 검정 역사교과서만 9종이다. 국정교과서 하나에 넣으려면 누군가 다시 써야 한다. 바뀌는 한국사 서술에 맞춰 관련 세계사 서술도 고쳐야 하는 일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세계사를 쓸 사람이 마땅치 않다. 사학자들의 집필 거부 행렬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한국사야 사학자들이 발을 빼더라도 정치학자, 경제학자, 문화 분야 연구자들이 어찌어찌 쓸 수 있다. 새누리당에서 사학계 전체의 좌경화를 주장하는 데에는 사학자들을 대신할 집필자들이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분야 전공자들이 세계사까지 손댈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인도사, 서아시아사, 동남아시아사 등의 분야는 대부분 대학교수라고 해봐야 우리나라를 통틀어 한두사람에 불과하다. 이들이 집필을 거부한다면 쓸 사람이 없다. 실제 유일한 인도사 교수는 집필 거부 의사를 주변에 알린 상태다. 가뜩이나 우리 세계사 교육은 유럽사나 중국사 등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이 많았다. 사학자들이 속된 말로 좀 팔리는 분야에만 몰린 결과다. 중국사와 서양사만 다루고 나머지는 모두 무시한다면 학생들이 서양중심주의나 중화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다. 중학교에서 배우는 세계사가 미래 세대 대부분이 배울 마지막 세계사이기 십상이란 점에서 더욱 그렇다. 고등학교에서 세계사는 선택과목이고, 실용교육을 강조하는 대학교육이라고 다를 게 없다. 과연 교육부가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검토했을 지 의심스럽다.
앞으로 서양과 중국만 알아도 되는 세계가 펼쳐진다면야 눈 딱 감고 넘어가겠지만 이미 지금의 세계는 인도나 브라질 등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자칫하면 미래 세대를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지 모른다. 미래의 주역이 그런 상태라면 한국이 시대의 흐름에 뒤쳐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박 대통령은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국정교과서의 당위성을 말하면서 "지금 세계의 지평은 날로 넓어지고 있고 세계가 하나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말을 아무리 곱씹어봐도 '우물 안 개구리'를 만들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