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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철의 산책

정보철 이니야 대표. '고전경영', '한 끗 차이' 저자



아는 자는 배우지 못한다. 이미 알고 있는데 무엇을 배울 것인가.

허나 현자들은 항상 배움을 추구했다. 앎에 대해서 항상 굶주렸다. 그래서 그들은 매일 배웠다. 도대체 무엇을 배운다는 것일까.

배움에 대한 물음과 대답은 삶의 정수(精髓)이다. 현자들은 항상 자신을 비워나갔다. 이와 동시 자신을 비운 공간에 그 어떤 것을 채워나갔다. 그것은 바로 이순간이라는 삶 자체였다. 이순간이기에 그들에게는 어제가 없었다. 내일도 없었다. 오직 이순간이다.

이순간에는 학벌, 혈연, 이상, 신념, 야망, 욕구 등 자신을 결정한다고 여겨지는 그 어떤 이미지가 없다. 이미지가 사라진 곳에는 본질만이 남는다. 본질은 아름다움이다. 직접적으로 삶과 부딪히는 원초적인 것이기에 섹시한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다.

현자들은 자신들이 비워놓은 그 자리에 본질, 삶의 아름다움을 채워나간 것이다. 허나 이 아름다움도 다음 순간 비워버렸다. 시간이 지나가면 그 아름다움은 퇴색되고 이미지만 남기 마련이다.

삶은 이미지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지에 갇혀 산다. 스승에 대한 이미지, 기업에 대한 이미지, 그녀에 대한 이미지 등등. 모든 것은 이미지로 이해하고 이미지로 받아들인다. 이미지는 실체가 아니다.

이미지의 취약점은 고정돼 있다는 것이다. 고정된 것은 지루하다. 역동성이 없다. 세상은 항상 변화하는데 이미지는 그대로 남아 있다. 실체가 아닌 허상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미지를 고집한다. 한 마디로 예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민하다는 것은 고도의 주의집중을 요하는 일이다. 마음을 항상 열어놓고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동시에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은 한결같은 풍부한 에너지를 요구한다.

에너지의 충족여부가 예민과 둔감을 가르는 가름대이다. 어제의 태양과 오늘의 태양을 같은 것으로 보는 자는 예민 하고는 거리가 멀다.

'태양은 항상 새롭게 떠오른다'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격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자이다. 배우는 자는 당연히 예민한 자이다.

반면 아는 자는 배움이 없다. 그들이 말하는 배움은 가짜다. 지식의 축적을 배움이라한다. 이미지를 강화하는 것일 따름인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계속해서 축적을 한다. 지식으로 가득 찬 사람은 실체를 볼 수 없다. 축적된 지식이 실체를 보는 것을 가로막는다. 따라서 아는 자의 삶은 권태롭다. 허상, 즉 이미지를 반복하기에 지루한 것이다.

배움이란 그 어떤 것도 축적하지 않는 것이다. 축적된 것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며, 움직이지 않는 것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흐르지 않는 물이 썩듯이 말이다.

항상 배우는자로 거듭나야 한다. 어린아이처럼 예민한 감각과 호기심이 물 흐르듯이 흘러야 한다.

배우는 어린아이의 삶은 희열이 있고 아는 어른은 권태가 뒤따르는 현실을 직시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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