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에도 지구촌의 주역은 기업이었다. 혁신으로 지구촌의 변화를 선도하는 기업이 있는가하면 쌓아온 신뢰를 무너뜨리며 지구촌을 충격에 빠뜨린 기업도 있었다. 또 논란의 중심에 서며 지구촌의 실상을 극명하게 드러낸 기업도 있었다. 하나하나가 지구촌의 현재 모습과 안고 있는 모순, 그리고 변화의 방향을 가늠하게 한다. 메트로신문은 다가오는 2016년을 준비하기 위해 올해 지구촌을 달궜던 글로벌기업 10곳을 골라 되돌아본다.
독일 볼프스부르크이 폭스바겐 공장 건물 위에 폭스바겐의 대형 로고가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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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 송병형기자] 폴크스바겐 스캔들로 디젤차량은 공공의 적이 됐다. 폴크스바겐은 '클린 디젤'의 선두주자다. 유럽이 힘을 모아 추진해 온 디젤 친화 정책의 중심에 있었다. 이번 스캔들로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유럽이 20여년 동안 해 온 노력은 사기극으로 드러났다. 2017년부터 유럽의 규제가 강화된다. 진짜 '클린 디젤' 개발에 들어가는 돈은 소비자의 주머니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이렇게 되면 디젤차가 과거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디젤차를 죽이고 있는가. 카를로스 곤 르느 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의 주장처럼 세계시장을 장악하려는 미국 측의 음모인가. 아니면 지난 2일자(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의 분석('폴크스바겐 스캔들로 메이드 인 독일은 타격을 받았나'라는 제하의 기사)처럼 폴크스바겐 경영진의 부패 탓인가.
전례에 비추어 단기간에 해답이 나오기는 힘들어 보인다. 미국의 경쟁업체가 2008년 토요타 급발진 사태의 배후에 있었다는 증거도 몇년이 지나서야 나타났다. 자동차업계가 전기차를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은 수십 년이 지나서야 드러났다.
그러나 현재시점에서 확실한 것도 있다. 자동차업계 전반에 배출가스 규제에 대한 무시 풍조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세계시장을 석권하려는 대형업체들 간의 치열한 경쟁이 폴크스바겐 스캔들을 낳았다는 점이다.
◆자동차 업계 '규제 무시' 풍조 만연
미국 자동차업계의 신화적인 인물인 로버트 루츠는 각국 정부의 배출가스 규제정책을 비만과의 싸움에 비유한 적이 있다. 그는 "비만과 싸우기 위해 의류제조업체에게 옷을 더 작게 만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규제의 필요성을 무시하는 말이다. 그의 말은 자동차업계에 만연해 있는 생각을 축약하고 있다. '우리가 (자동차에 대해) 가장 잘 안다'라거나 '규제는 어리석다'라는 생각이다.
폴크스바겐 스캔들이 터지자 유럽의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런 상황이 폴크스바겐에 국한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다른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검사결과 데이터를 보면 그들도 역시 나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가 "배출가스 검사시 데이터 조작은 자동차업계 전반에 널리 퍼져 있는 수십 년 된 관행으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보도한 것도 이 때문이다.
◆15년 지속된 미 자동차 빅3의 '스모그 음모'
NYT는 검사 조작을 두고 수십 년 된 관행이라고 했지만 자동차업계의 실상은 이보다 훨씬 충격적이다. 1950년대 초 대도시의 스모그 문제가 논란이 되기 시작했을 때 미국 내 빅3인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크라이슬러는 당국의 규제를 막는 음모를 꾸몄다. 세 업체는 스모그 논쟁의 중심지였던 로스앤젤레스 시를 기만했다. 공공보건을 위해 오염 절감 기술을 연구하겠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똘똘 뭉쳐 절감 장치의 개발을 막았다. 관련 연구를 지연시키고 장치 개발을 막기 위해 자신들의 영향력을 총동원했다.
이 음모는 1968년에 가서야 드러났다. 당시 미 법무부는 세 업체를 독점금지법 위반으로 기소하면서 "이들이 1953년 이후 계속해서 자동차 배출가스 제어장치의 유통을 막았다"고 밝혔다. 무려 15년 동안이나 지속된 음모였다. 캐나다의 세계화연구센터는 이에 대해 "대도시 사람들을 독무 속에 가둔 음모"라며 "폴크스바겐 스캔들을 능가했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빅3, 치열한 1위 경쟁이 '불난 데 부채질'
글로벌 빅3의 1위 경쟁은 이 같은 오랜 관행을 더욱 부채질했다.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로 GM이 파산에 직면한 뒤 GM, 토요타, 폴크스바겐의 1위 경쟁은 치열해졌다. 토요타가 GM의 추락을 기회로 2008~2010년 연속으로 1위를 차지했지만, 미국 정부의 도움으로 저력을 회복한 GM이 2011년 1위 자리를 탈환한다. 토요타가 2008년 급발진 사태로 2500만대 대량 리콜 사태를 맞은 이유도 있었다. 급발진 사태를 헤쳐 나온 토요타는 2012년 다시 정상을 탈환하고 다음해까지 1위 자리를 고수했다.
그 사이에 폴크스바겐의 성장세는 무서웠다. 폴크스바겐은 토요타가 고비를 맞자 바로 2위로 치고 올라왔고, 2014년에는 클린 디젤을 내세워 처음으로 정상에 올랐다. 보스턴대학 투데이(BU Today)는 "이번 스캔들은 토요타를 누르고 싶어하는 폴크스바겐 최고경영진의 집착에서 시작됐다"며 "2015년 상반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폴크스바겐은 금도를 넘어서게 됐다"고 꼬집었다.